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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묘

(고려문신) 재지 최재 [문정공] -전주최씨

by 보현당 2024.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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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에, 감찰대부, 전리판서, 개성윤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재지(宰之). 선부전서(選部典書) 최득평(崔得枰)의 아들이다.

1321년(충숙왕 8) 동대비원녹사(東大悲院錄事)로 출발, 산원(散員)·별장(別將)을 거쳐 1330년 과거에 급제하였다.

충숙왕 복위 연간에 중부령(中部令)과 감찰지평(監察持平)을 지내고, 충목왕 즉위 초에는 전법정랑(典法正郎)을 거쳐 지흥주사(知興州事)로 외보(外補)되어 백성을 잘 다스렸으나, 권신 인승단(印承旦)의 미움을 받아 파직되었다.

1347년(충목왕 3) 정치도감(整治都監)이 설치되어 권문세가의 토지·노비 등의 부당한 탈점을 정리할 때 판관(判官)으로 참여했으며, 이듬해 경상도안찰사(慶尙道按察使)로 나갔다가 다시 전객부령(典客副令)·자섬사사(資贍司使)로 옮겼다.

1349년(충정왕 1) 양주(襄州)의 수령으로 나가 있던 중 원나라의 강향사(降香使)가 존무사(存撫使)를 부당하게 욕보이는 것을 보고 개탄, 항의의 표시로 사직했으나 이로 인해 오히려 감찰장령(監察掌令)에 특진되었다.

공민왕 즉위 후 개성소윤(開城少尹)·전법총랑(典法摠郎)·감찰집의(監察執義)·상서우승(尙書右丞)·대부시사(大府寺事) 등의 관직을 차례로 역임하면서 왕으로부터 직접 칭찬을 받을 만큼 많은 치적을 올렸다. 1359년(공민왕 8) 다시 공주목사(公州牧使)로 출보되었으며, 1361년 상주목사(尙州牧使)로 옮겼다.

그 해 겨울 홍건적의 재침으로 피난하는 왕을 상주에서 맞게 되었는데, 호종했던 관리들의 참소로 파직되었으나 1364년 감찰대부(監察大夫)로 기용되고, 중대광완산군(重大匡完山君)에 봉해졌다.

그 뒤 전리판서(典理判書)와 개성윤(開城尹)을 역임했으며, 1374년 벼슬을 사퇴하고 향리로 돌아갔다. 우왕 때 밀직부사 상의(密直副使商議)를 제수했으나 사양하였다. 성품이 강직해 사람들이 중히 여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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