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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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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신씨3

(11) 온릉(溫陵) - 정비 단경왕후(端敬王后) 거창신씨 단경왕후(端敬王后) 거창신씨 단경왕후는 1487년(성종 18) 1월 14일 익창부원군 신수근의 딸로 태어났다. 1499년(연산군 5) 13세의 나이로 진성대군(훗날 중종)과 가례를 올렸다. 1506년(연산군 12)에는 반정으로 인해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연산군의 왕비의 오빠이자 그녀의 아버지인 신수근이 반정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고, 여기서 비롯될 훗날의 화를 잠재우기 위한다는 반정세력의 명분에 따라 왕비의 자리에 오른 지 7일 만에 폐위 당하였다. 폐위 당시 20세였던 단경왕후는 1557년 12월 7일 71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온릉은 폐비의 신분으로 승하한 단경왕후의 능이다. 따라서 능을 조영할 당시에는 왕릉의 상설을 갖추지 못하였으나 1739년(영조 15) 복위되어.. 2015. 6. 7.
(10) 연산군묘(燕山君墓) - 연산군(燕山君), 거창군부인(居昌郡府人) 거창신씨 연산군(燕山君) 거창군부인(居昌郡府人) 거창신씨 - 연산군은 1506년 11월 유배지인 강화 교동에서 31세의 나이로 병사하였다. 부인 신씨는 영의정 신승선(愼承善)의 딸로서, 연산군의 폐왕과 함께 폐비가 되었다. 연산군이 죽은 뒤에는 묘를 강화에서 양주군 해동면 원당리(현 위치)로 이장하기를 청하여, 1513년 2월 왕자군(王子君)의 예로 이장하고 양주군 관원으로 하여금 치제하게 하였다. - 연산군은 성종의 아들로 조선 10대 왕이다. 1494년 성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며, 즉위 3년 동안은 별 탈 없이 정사를 펼쳤다. 그러나 1498년(연산군 4) 훈구파 이극돈, 유자광 등의 계략에 빠져, 사초(史草)를 문제삼아 김종직 등 많은 신진 사류를 죽이는 최초의 사화인 무오사화를 일으켰다. 1504년.. 2015. 6. 7.
(10대) 연산군묘 - 연산군, 거창군부인 거창신씨 [사적 제362호] 연산군(燕山君), 거창군부인(居昌郡府人) 연산군(燕山君, 1476년 음력 11월 7일 (양력 12월 2일) ~ 1506년 11월 6일, 재위 1494년 ~ 1506년)은 조선의 제10대 임금이다. 휘는 융(㦕)[1]. 성종의 장남으로 폐비 윤씨의 소생이며, 비는 영의정 신승선(愼承善)의 딸이다. 모후 폐비 윤씨의 폐출 이후 정현왕후의 손에 자랐으나, 자신의 생모가 폐비 윤씨임을 알게 되었다. 그 뒤 어머니 폐비 윤씨를 왕비로 추숭하려 하자, 성종의 유명을 내세워 왕비 추숭을 반대한 사림파 문인들과 갈등하다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빌미로 사림파를 제거했다. 또한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을 빌미로 발생한 갑자사화에서는 훈구파도 대량으로 숙청되어, 사림, 훈구 양측을 모두 적으로 돌리게 되었다. 사림파 관료들과의.. 2012.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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