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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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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이씨2

(문신) 남계 이길, 숙인 제주양씨, 숙인 창녕조씨 -광산이씨- 1547(명종 22)∼1589(선조2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경연(景淵), 호는 남계(南溪). 제학 중호(仲虎)의 아들이고, 발(潑)의 아우이다. 생원시에 올라 1577년(선조 10) 태묘별시문과(太廟別試文科)에 을과로 급제하고, 사인을 거쳐 벼슬이 응교에 이르렀다. 발이 이이(李珥)·성혼(成渾)과 교분이 차츰 멀어지자 서인들이 미워하므로 시사(時事)에 참여할 수 없음을 알고 고향으로 물러갈 때 함께 낙향하였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모역사건을 계기로 서인들이 집권하자 동인들에게 박해가 가하여져, 형 발·급(汲) 등은 모진 고문 끝에 장살되었고, 그도 희천으로 귀양갔다가 뒤에 불려와서 역시 죽음을 당하였다. 1694년(숙종 20) 신원되고 부제학에 추증되었다. 2016. 7. 1.
(문신) 동암 이발, 정부인 말양박씨 -광산이씨-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경함(景涵), 호는 동암(東巖)·북산(北山). 증조할아버지는 상의원정(尙衣院正)과 지제교(知製敎)를 지낸 이달선(李達善)이고, 할아버지는 홍문관박사를 지낸 이공인(李公仁)이며, 아버지는 승정원도승지와 이조참판·전라도관찰사를 역임한 이중호(李仲虎)이다. 부인은 박이(朴苡)의 딸이다. 이발(李潑)[1544~1589]은 1573년(선조 6) 알성 문과에 장원하였으며 이듬해에 사가독서(賜暇讀書)한 후 이조정랑과 사헌부장령을 지냈다. 1579년(선조 12) 응교에서 1581년(선조 14) 홍문관전한을 거쳐 1583년(선조 16) 홍문관부제학을 지내다가 이듬해 사간원대사간을 역임하였다. 김근공(金謹恭)과 민순(閔純)에게 수학하였으며, 홍가신(洪可臣)·최영경(崔永慶)·김우옹(金宇顒)·허당(.. 2016.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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