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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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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충공8

(문신) 문충공 학봉 김성일, 정부인 안동권씨 -의성김씨- 조선시대 통신부사,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경상우도순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경상북도 안동 출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사순(士純), 호는 학봉(鶴峰). 아버지는 김진(金璡)이며, 어머니는 여흥 민씨(驪興閔氏)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일본에 파견되었다가 돌아와 일본이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여 왜란 초에 파직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시 경상도초유사로 임명되어 왜란 초기에 피폐해진 경상도 지역의 행정을 바로 세우고 민심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1556년(명종 11) 동생 김복일(金復一)과 함께 도산(陶山)으로 이황을 찾아가 『서경』 · 『역학계몽(易學啓蒙)』 · 『심경』 · 『대학의의(大學疑義)』 등을 익혔으며, 1564년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서 수학하였다. 그 후 다시 도산에 돌아.. 2023. 6. 26.
(공신) 풍원부원군 서애 류성룡 [문충공], 정경부인 전주이씨 -풍산류씨- 풍원부원군 문충공 서애 류성룡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 증조할아버지는 류자온(柳子溫)이고, 할아버지는 류공작(柳公綽)이다. 아버지는 황해도관찰사를 지낸 류중영(柳仲班)이며, 어머니는 진사 김광수(金光粹)의 딸이다. 아들 수암 류진(柳袗)과 손자 졸재 류원지는 그의 도학(道學)을 계승하였다.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은 1564년(명종 19) 생원·진사가 되었고, 이듬해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한 다음 1566년(명종 21)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가 되었다. 1567년 정자를 거쳐 예문관검열로 춘추관기사관을 겸직하였다. 1569년 성균관전적과 공조좌랑을 거쳐 사헌부감찰로서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왔다.. 2015. 2. 3.
(문신, 사육신) 매죽헌 성삼문 [충문공] -창녕성씨- 충문공 매죽헌 성삼문 성삼문(成三問, 1418년 ~ 1456년 6월 8일)은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로서,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세종대왕을 도와 집현전에서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였고, 단종 복위 운동을 추진하였다. 자는 근보(謹甫)·눌옹(訥翁), 호는 매죽헌(梅竹軒), 시호는 충문(忠文), 본관은 창녕이다. 성승(成勝)의 아들이며, 성달생의 손자이다. 생원으로 1438년 과거에 급제하여 집현전 학사의 한사람으로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했고, 1447년 중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1450년 어린 세손을 부탁한다는 세종의 유지를 받들다가 세조 찬위 이후 단종 복위 운동을 주관하였으나, 신숙주, 정인지 등이 세조의 편에 서고 김질 등이 밀고함으로써 실패하고 만다. 그는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 때 신숙주와 함께 .. 2015. 1. 11.
(공신) 아성부원군 이산해 [문충공], 정경부인 양주조씨 아성부원군 문충공 이산해 1539(중종 34)∼1609(광해군 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여수(汝受), 호는 아계(鵝溪)·종남수옹(終南睡翁). 장윤(長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치(穉)이고, 아버지는 내자시정(內資寺正) 지번(之蕃)이며, 어머니는 남수(南脩)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작은아버지인 지함(之菡)에게 학문을 배웠다. 1558년(명종 13) 진사가 되고, 1561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에 등용되고, 이듬 해 홍문관정자가 되어 명종의 명을 받아 경복궁대액(景福宮大額)을 썼다. 이어 부수찬이 되고 1564년 병조좌랑·수찬, 이듬 해 정언을 거쳐 이조좌랑이 되었다. 1567년(선조 즉위년) 원접사종사관(遠接使從事官)으로 명나라 조사(詔使)를 맞이한 뒤 이조정랑·의.. 2013. 10. 15.
(문신) 선원 김상용 [문충공], 정경부인 안동권씨 문충공 선원 김상용 1561년(명종 16)∼1637년(인조 15). 조선 인조 때의 상신(相臣)이며, 병자호란 때의 순절인(殉節人). 본관은 안동. 자는 경택(景擇), 호는 선원(仙源)·풍계(楓溪)·계옹(溪翁). 서울 출신. 돈령부도정(敦寧府都正) 극효(克孝)의 아들이며, 좌의정 상헌(尙憲)의 형, 좌의정 정유길(鄭惟吉)의 외손이다. 1582년(선조 15) 진사가 되고 1590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강화 선원촌(江華仙源村: 지금의 江華郡 仙源面 冷井里)으로 피난했다가 양호체찰사(兩湖體察使) 정철(鄭澈)의 종사관이 되어 왜군토벌과 명나라군사 접대에 공을 세움으로써 1598년 승지에 발탁되고, 그뒤 왕의 측근에서 전란중의 .. 2012. 11. 11.
(숙종의 국구) 광성부원군 김만기 [문충공], 서원부부인 청주한씨 광성부원군 문충공 정관재 김만기 본관은 광산. 자는 영숙(永淑), 호는 서석(瑞石)·정관재(靜觀齋). 증조부는 형조참판을 지낸 장생(長生)이며, 아버지는 생원 익겸(益兼)이다. 인경왕후의 아버지인 숙부 익희(益熙)에게 수학하고,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 되었다. 1652년(효종 3) 사마시를 거쳐 이듬해 별시문과에 급제, 승문원에 등용되고 수찬·정언·교리 등을 지냈다. 1659년 효종이 죽자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服喪)문제로 논란이 일어났을 때 기년설(朞年說)을 주장했으며, 3년설을 제기한 남인 윤선도(尹善道)를 공격했다(→ 기해예송). 1671년(현종 12) 딸이 세자빈이 되었고, 1673년 영릉(寧陵)을 옮길 때 산릉도감(山陵都監)의 당상관이 되었으며, 그뒤 병조판서를 지냈다. 1674년 숙종이.. 2012. 9. 18.
(문신) 북헌 김춘택[충문공], 정경부인 완산이씨 충문공 북헌 김춘택 본관은 광산. 자는 백우(伯雨), 호는 북헌(北軒). 숙종의 장인인 만기(萬基)의 손자이며, 호조판서 진구(鎭龜)의 아들이다. 서인 노론의 중심가문에 속하여,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 이후 남인이 정권을 잡았을 때 여러 번 투옥·유배되었다. 1694년 재물을 써서 궁중에 내통하여 폐비 민씨를 복위시키려다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으나, 갑술환국으로 남인이 축출되자 풀려났다. 서인이 노론·소론으로 갈라지자 노론에 속하여 1701년 소론의 탄핵으로 부안에 유배되었다. 1706년에는 희빈 장씨의 소생인 세자(뒤의 경종)를 모해하려 한다는 혐의를 받고 제주에 안치되었다. 시와 글씨에 뛰어났고, 문장이 유창하여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한문으로 번역했다. 저서에 〈북헌집〉과.. 2012. 9. 15.
(문신) 약천 남구만[문충공], 정경부인 동래정씨 문충공 약천 남구만 1629(인조 7)~1711(숙종 37)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서인의 중심인물이었으며, 문장과 서화에도 뛰어났다. 널리 알려져 있는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의 지은이이다. 본관은 의령.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미재(美齋). 개국공신 재(在)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지방 현령이었던 일성(一星)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생이었던 송준길(宋浚吉)에게 수학, 1656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했다. 정언·이조정랑·집의·응교·사인·승지·대사간·이조참의·대사성 등을 거쳐서 1668년 안변부사·전라도관찰사를, 1674년 함경도관찰사를 지냈다. 숙종초 대사성·형조판서를 거쳐 1679년(숙종 5) 한성부좌윤을 지냈다. 같은 해 남인인 윤휴·허견 등을 탄핵하다가 남해로 유.. 2012.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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