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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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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남박씨14

(문신) 박훤, 정부인 능성구씨 부윤공 박훤 박은(朴訔)은 삼남 부윤공 박훤(朴萱) 이시다. 성종 7년(1476) 2월 13일 경주 부윤(慶州府尹)으로 재수 받으셨다. 오랜 역사를 지낸 경주는 1413년 경주부로 1895년에는 경주군으로 개칭 된바 있는데 부윤공께서는 조선 때 세조가 왕이 되는데 협력한 공으로 원종공신 2등의 훈호를 받고 경주부윤을 지냈다. 세조 1년 원종공신 2등의 녹훈을 받으시고, 세조 7년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세조 13년 호조참판(戶曹參判)으로 명나라 정조(正朝)를 하례(賀禮)하고. 세조 14년 명(明)나라로부터 돌아왔다. 성종 7년 경주부윤(慶州府尹)으로 재수 받으셨다. 영의정에 추증 되었다. 2013. 1. 22.
(문신) 금천군 박강[세양공], 정경부인 순흥안씨 금천군 세양공 박강 박강(朴薑) ?∼1460(세조 6).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좌의정 은(訔)의 아들이다. 성질이 정교(精巧)하고 기능(技能)이 많아서 1444년(세종 26) 대호군(大護軍)을 거쳐 이듬해 군기감정(軍器監正)에 임명되어 항시 이 직무를 맡고 있었다. 1449년 공조참의와 이조참의를 거쳐 1450년(문종 즉위년)황해도도절제사가 되고, 이듬해 황해도도관찰사 겸 병마도절제사가 되었다. 1452년(단종 즉위년) 중추원부사가 되고 1455년(세조 1)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단종의 왕위를 수선(受禪)하는 일에 협력, 그 공으로 좌익공신(佐翼功臣)3등에 책정되고 금천군(錦川君)에 봉하여졌다. 1457년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이듬해 황해도도순찰사가 되었다. 시호는 세양(世襄)이다. 2013. 1. 22.
(문신) 박규, 정부인 원주변씨 관찰사 박규 ?∼1437(세종 19).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좌의정 은(訔)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전법판서(典法判書) 주언방(周彦邦)의 딸이다. 음보(蔭補)로 여러 벼슬을 거쳐 1425년(세종 7) 판통례원사(判通禮院事)가 되고 형조·이조의 참의를 지낸 뒤, 1429년 황해도관찰사를 거쳐 동지총제(同知摠制)에 승진되고 예조·호조·형조의 참판을 역임하였다. 1433년 평안도관찰사가 되어 재직중 야인(野人)들의 약탈을 막지 못하여 함열(咸悅)로 유배되었다가 곧 방환되어 영남관찰사로 부임하였다. 그뒤의 사적은 자세히 알 수 없다. 2013. 1. 22.
(관직) 금천부원군 박은 [평도공], 진한국대부인 장흥주씨 금천부원군 평도공 박은 1370(공민왕 19)∼1422(세종 4).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앙지(仰之), 호는 조은(釣隱). 할아버지는 수(秀)이고, 아버지는 고려 말의 학자인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상충(尙衷)이며, 어머니는 이곡(李穀)의 딸이다. 전법판서(典法判書) 주언방(周彦邦)의 사위이며, 어효첨(魚孝瞻)의 장인이다. 문음(門蔭)으로 판숭복도감사(判崇福都監事)를 받은 뒤, 1385년(우왕 11) 문과에 2위로 급제해 권지전교시교감(權知典校寺校勘)·후덕부승(厚德府丞)을 거쳐 1391년(공양왕 3) 통례문부사(通禮門副使), 이듬해 개성부소윤(開城府少尹)이 되었다. 조선이 개창된 뒤에도 지금주사(知錦州事)가 되었고, 고과(考課)에 정최(政最)의 성적을 받아 좌보궐(左補闕).. 2013.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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