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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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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현충원4

(백마고지전투) 육군상병 오규봉 1952년 10월 철의 삼각지인 백마고지 전투시 중공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30연대 1중대의 공격이 중단되었다. 이때 1소대의 오규봉 상병은 적 자동화기 진지를 폭파하기 위하여 대공포 판을 등에 메고 적 자동화기 진지로 돌진하였으며 소대장 강승우 소위와 안영권 일병은 화력으로 엄호사격을 하였다. 이 순간 소대장 강승우 소위가 티엔티와 박격포탄으로 적 특화점 공격을 결심, 기관총 진지의 7m까지 포복으로 전진 폭발물을 투척하려는 순간, 우측 팔에 총상을 입고 떨어뜨린 것을 안영권 일병이 잽싸게 주워 투척하고 오규봉 상병도 수류탄을 투척하여 기관총 진지를 파괴하고 산화함으로서 중대가 공격을 재개하여 목표를 탈환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들의 용감한 군인정신은 25회에 걸쳐 뺏고 빼앗기는 격전을 치른 백마고지 전.. 2017. 6. 6.
(이름없는 묘) 김 소위 (소위 김수영) 6·25전쟁 초기 최후의 방어선이었던 낙동강 방어선 경북 안강지구 도음산 전투에서 전사(1950.8.27.)어는 소대장(김 소위라는 것만 알고 있음)의 시신을 같이 전투에 참가했던 다른 부대의 한 소대장 (황규만)이 치열한 전투로 인해 급한 대로 능선 후사면 소나무 밑에 가매장 한 후 후일을 위해 돌로 표시를 하여 두고 다시 전투를 계속했다.전쟁은 끝나고 14년 뒤, 살아남은 황 소대장은 대령이 되어 1군사령부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면서 그동안 잊지 못했던 이 전우의 시신을 찾기 위해 그 장소로 가 오랜 기억을 더듬으며 헤맨 끝에 시신을 발굴했다. 그러나 이름을 알 수 없어 국립묘지 안장을 할 수 없자 고민 끝에 육군참모 총장에게 이 사실을 청원, 승인을 받아 1964년 5월 29일 이름도 없이 국립묘지 제.. 2017. 6. 6.
(호국형제 묘) 하사 이만우(兄), 이등중사 이천우(弟) 故하 사 이만우(兄, 22세) : 30묘역 26549호 故이등중사 이천우(, 19세) : 30묘역 39591호 6ㆍ25 전쟁 당시 오직 구국의 일념으로 사랑하는 홀어머니를 뒤로한 채 각각 정든 고향집을 떠났던 두 형제가 전사한 지 60년 만에 다시 만나 이곳에 함께 잠들어 있다.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이들 형제는 낙동강 전투가 한창이던 1950년 8월 형님(故 하사 이만우)이 입대한 지 한 달 만에 당시 18세이던 동생(故 이등중사 이천우) 또한 형님의 뒤를 이어 자원입대하였다. 각각 1사단과 7사단 소속으로 서울 수복작전에 이어 북진의 선봉에 서서 평양탈환작전 등 주요 전투에 참가하여 혁혁한 무공을 세운 형제는 안타깝게도 이듬해인 1951년 5월 7일 고양지구전투에서 형님이 전사(화랑무공훈장 수훈)하고.. 2017. 6. 6.
(호국부자묘) 공군소령 박명렬(父), 공군대위 박인철(子) 故공군소령 박명렬(父) : 29묘역 3305호 故공군대위 박인철(子) : 29묘역 3557호 조국의 하늘을 지키기 위해 부자(제17전투비행단 故공군소령 박명렬(父, 31세), 제20전투비행단 故 공군대위 박인철 (子, 27세))가 공군사관학교에 입교하여 장교로 임관 후 오직 호국의 일념으로 근무하다가 사랑하는 가족을 남기고 순직하여 이곳에 함께 잠들어 있다.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난 아버지(故 소령 박명렬)는 1978년 3월 28일에 공군소위(공사 26기)로 임관하였고, 서울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뒤를 이은 아들(故 대위 박인철)은 2004년 3월 17일 공군소위(공사 52기)로 임관하였다. 부자(父子)는 각각 제17전투비행단과 제20전투비행단 소속의 전투기 조종사로서 각종 훈련에 참가하여 타의 모범이 되는.. 2017.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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