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반응형

선산김씨5

(선조) 정근옹주, 일선위 김극빈 -선산김씨- 정근옹주, 일선위 김극빈 정근옹주(貞謹翁主, ?~1613)는 조선 제14대 왕인 선조의 아홉번째 딸로 선조와 그의 후궁인 정빈(靜嬪) 민씨(閔氏)의 소생이다. 병조판서를 지낸 김이원(金履元)의 아들인 일선위(一善尉) 김극빈(金克?)에게 출가하였다. 묘는 남편의 묘와 동-서로 나란히 하여 동향하여 있는데 우선 상부의 묘는 장방형 화강암 석재 9매를 이용하여 호석을 둘렀다. 아래의 묘도 장방형 화감암 8매를 원형으로 둘렀다. 묘 우측에는 묘비가 세워져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비좌가 있다. 묘 중앙에는 상석, 향로석이 있고, 좌우에는 망주석과 문인석이 각 1쌍씩 있다. 2019. 3. 19.
(금원군 파) 호안군 백첨 이오, 현부인 선산김씨 -전주이씨- 호안군(湖安君) [1596(선조 29)∼1665(현종 6)] 휘는 오(澳), 자는 백첨(伯瞻). 중종대왕의 7남인 덕흥대원군의 증손으로 선조대왕의 친형인 하원군(河原君)의 손이다. 하원군의 3남인 영제군의 장남으로 1596년(선조 29) 2월 20일 태어나 1610년 15세에 정3품 호안정(湖安正)의 벼슬을 받았고 바로 승계되어 도정(都正) 겸 사옹원 부제조를 거쳐 곧 승진하여 정의대부 호안군에 봉작되었다. 1613년(광해군 5) 계축사화 폐모사건에 연루되어 죄를 얻게 되고, 1624년(인조 2) 갑자변에 무고를 입어 옥에 갇히게 되니 대신들이 극력 간하여 흥해(興海)에 부처(付處)되었다가 바로 석방되었다. 1627년(인조 5) 여진족의 난 뒤에 큰 옥사가 있어 다시 강진 남해 궁벽한 곳에 유배되었다가 .. 2018. 10. 28.
(관직) 숭양부원군 김이원, 정경부인 강릉김씨 -선산김씨- 숭양부원군 소암 김이원 김이원(金履元, 1553년 ~ 1614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선산(善山). 호는 소암(素菴), 자는 수백(守伯), 초명은 신원(信元)이다. 형은 성암 김효원이고 동생은 대사간 김의원이다. 1583년 알성 문과에 급제, 호조좌랑·수찬 등을 지냈다. 정언을 거쳐, 1593년 의주 목사로 부임하여 흉년으로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형조참판에서 경기도 관찰사가 되었으며 백성들이 명나라 군사들에게 시달림을 받던 도내 행정을 바로잡았다. 1612년 선조의 딸 정근옹주를 며느리로 맞이하였다. 뒤에 숭양부원군에 봉해지고 병조판서 · 판중추부사를 지냈다. 경기도 양주의 숭양사(嵩陽祠)에 제향되었다. 그러나 광해군 시기 때 1609년 임해군을 죽이고 1612년.. 2015. 12. 5.
(문신) 곤륙재 김의원, 숙부인 영산신씨 -선산김씨 곤륙재 김의원 1558(명종 1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의백(宜伯), 호는 곤륙재(困六齋). 수현(秀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덕유(德裕)이고, 아버지는 현령 홍우(弘遇)이며, 어머니는 윤은좌(尹殷佐)의 딸이다. 형이 효원(孝元)이다. 1588년(선조 21) 진사시에 1등으로 합격하고, 159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금을 호종하였고, 1593년 지제교(知製敎)가 되었다. 1594년 전라도도사(全羅道都事)가 된 뒤 세자시강원사서(世子侍講院司書)를 거쳐 황해도어사로 나아가 군선(軍船)의 실태를 조사하였고, 이듬해 지평(持平)이 되었다. 1597년 이조좌랑을 거쳐 장령(掌令)·직강(直講)·이조정랑·교리(校理)·보덕(輔德)·악정.. 2015. 12. 5.
(문신) 성암 김효원[김선생], 정부인 초계정씨 -선산김씨- 성암 김선생 효원 1542(중종 37)∼1590(선조 23).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인백(仁伯), 호는 성암(省菴). 수현(秀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전생서직장 덕유(德裕), 아버지는 영유현령(永柔縣令) 홍우(弘遇), 어머니는 윤은좌(尹殷佐)의 딸이다. 조식(曺植)·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64년(명종 19) 진사가 되고, 1565년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해 병조좌랑·정언·지평 등을 역임했다. 1573년(선조 6) 사가독서(賜暇讀書)하고, 1574년 다시 지평을 맡았다. 명종 말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죽은 뒤 척신계(戚臣系)의 몰락과 더불어 새로이 등용되기 시작한 사림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1572년 오건(吳健)이 이조전랑(吏曹銓郎)에 추천했으나, 사림으로 척신 윤원형(.. 2015. 12. 5.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