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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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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6

(세종대왕, 밀성군 파) 광성정 이전, 신부인 강릉김씨 -전주이씨- 광성정(匡城正, 1493년∼1545년)은 조선 시대의 왕실 종친으로 세종의 12남인 밀성군의 손자이다. 초수는 부정이었다가 뒤에 정으로 승진했으며, 이름은 이전(李銓)이다. 세종의 손자 운산군의 3남으로 태어났다. 초수는 부정으로 광성부정(匡城副正)이라 했다가 뒤에 정으로 승작하였다. 판관(判官) 김유악(金由岳)의 딸에게 장가들어 2남 1녀를 두었다. 둘째 아들 광원수 이구수의 후손에서 이경여, 이수여 등의 재상이 배출되었다. 2024. 1. 5.
(세종) 귀인 전주최씨 본관은 전주이다. 아버지는 판돈녕부사 등을 지낸 최사의이며, 어머니는 박가흥의 딸이다. 1424년(세종 6년) 음력 10월 26일 박강생의 딸(귀인 박씨)과 함께 후궁에 책봉되어 명의궁주에 봉해졌으며, 이때 최씨의 아버지 최사의는 충좌사상호군에 봉해졌다. 2022. 12. 23.
(세종, 경기 남양주시) 정안옹주, 청성위 안도공 심안의 -청송심씨- 1438년(세종 20)∼1461년(세조 7). 세종(世宗)의 딸로 모친은 숙원이씨(淑媛李氏)이다. 청성위(靑城尉) 심안의(沈安義)에게 하가하였다. 심안의는 관찰사 심선(沈璿)의 아들이다. 선조의 딸인 정안옹주(貞安翁主)와 동명이인이다. 1461년 정안옹주가 사망하자 세조는 조회를 3일 동안 정지하고 쌀‧콩 아울러 1백 석과 종이 2백 권, 백저포(白苧布)‧면포(綿布) 각가 10필, 베[布] 60필을 부의(賻儀)로 주었다. 1438(세종 20)∼1476(성종 7). 조선 전기의 부마(駙馬). 본관은 청송(靑松). 아버지는 관찰사 심선(沈璿)이다. 세종의 딸 정안옹주(貞安翁主)의 남편으로 순의청성위(順義靑城尉)에 봉하여졌다. 1455년(세조 1)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1등에 책봉되고 황주선위사(黃州宣慰.. 2022. 6. 15.
(세종) 영풍군 정렬공 이전 -육종영, 전주이씨- 영풍군 정렬공 이전 1434(세종 16)∼1457(세조 3). 조선 전기의 왕자. 이름은 이전(李瑔). 세종의 여덟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혜빈 양씨(惠嬪楊氏)이다. 한남군(漢南君)이어(李)와 수춘군(壽春君)이현(李玹)의 동생이다. 부인은 형조참판 박팽년(朴彭年)의 딸이다. 1441년(세종 23)영풍군에 봉군되어, 1455년(세조 1) 세조의 즉위와 함께 1453년(단종 1) 10월의 계유정변 이래로 정치·군사권을 장악하였다. 궁극적으로는 왕위에 나아가려는 수양대군(首陽大君: 世祖)과 대립하여, 단종과 그 왕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던 혜빈 양씨·금성대군(錦城大君)이유(李瑜) 등이 제거될 때 이와 관련되어 예안에 유배되었다가 곧 안성에 이배되었다. 1456년성삼문(成三問) 등에 의한 단종복위사건을 계기.. 2020. 2. 24.
(04대) 세종대왕 신도비 - 영릉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1-1호] 세종대왕 신도비 세종대왕 신도비는 문종 2년(1452)에 현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 산 13번지, 영릉(英陵)에 세워졌던 것을 1974년 5월에 이전해 온 것이다. 영릉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능으로 예종 원년(1469) 3월에 현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으로 옮기면서 신도비와 영릉 주변의 석물(石物)을 그대로 두었다. 신도비는 조선 시대에 국왕이나 종2품 이상의 고위관리만 무덤 앞에 세울 수 있었다. 이 신도비는 옛 영릉 터에서 약 1km 떨어진 순조의 인릉(仁陵)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신도비의 머리부분인 이수(螭首)는 두 마리의 용이 좌우에서 구슬을 물고 있는 모습이며, 조각 솜씨는 매우 정교하지만 오랜 세월에 걸친 풍화작용으로 인하여 손상이 심하다. 총 4,886자의 글자가 새겨진 이 비석은 세종대왕.. 2012. 12. 2.
(세종의 국구) 청천부원군 심온 [안효공] 청천부원군 안효공 심온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중옥(仲玉). 아버지는 청성백(靑城伯) 덕부(德符)이다. 세종의 비 소헌왕후(昭憲王后)가 그의 딸이다. 고려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지냈으며, 조선왕조 개국 후 의랑(議郞)·대호군(大護軍)이 되었다. 1404년(태종 4) 상호군 겸 판통례문사(上護軍兼判通禮門事)가 되었고, 이후 좌부대언(左副代言)·좌군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 등을 역임했다. 1408년 딸이 충녕군(忠寧君 : 나중에 세종)의 비가 되었다. 1411년 풍해도관찰사·대사헌을 거쳐, 1414년 형조판서가 되었고, 이후 호조판서·판한성부윤·좌군도총제·이조판서를 역임했다. 태종의 선위(禪位)로 세종이 즉위하자 영의정이 되었다. 1418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갔는데, 이때 병조참판 강상인(姜尙仁)과 그.. 2012.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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