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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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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괴정7

(유학, 육괴정) 계산 오경, 의인 의성김씨 -해주오씨-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경지(慶之)이고, 호는 계산(溪山)이다. 본관은 해주(海州)이고, 출신지는 한양(漢陽)이다. 부친은 예조좌랑(禮曹佐郞)을 지낸 오예손(吳禮孫)이고, 동생은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역임한 오상(吳祥)이다. 동생 오상과 함께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에게서 수학하였으며, 1531년(중종 26) 식년시 진사 3등 48위로 합격하였다. 이후 은둔하며 장동(長洞)의 시냇가에 살면서 동네 이름을 ‘미록(麋鹿)’이라 하고, 호를 ‘계산(溪山)’이라 하며 시냇가에서 거문고를 타고 시를 읊는 즐거움을 누렸다. 글 짓는 능력이 출중하였으며, 모재 김안국‧처사(處士) 엄용순(嚴用順)‧한림(翰林) 강은(姜溵)과 교유하면서 시를 주고받은 글이 『계산유고(溪山遺稿)』에 남아 있다. 2023. 1. 3.
(육괴정) 어은 임내신, 정부인 평해손씨, 정부인 전주이씨, 정부인 단양우씨 -풍천임씨- 육괴정 어은 임내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조원(調元), 호는 어은(漁隱) 또는 퇴휴(退休)이다. 1512년(중종 6) 평택현감을 지낸 임주(任柱)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1538년(중종 32)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검열, 사인을 지낸 후 사가독서(賜暇讀書)에 참여하였다. 이후 수찬, 장령 등을 역임하였으며 1550년(명종 5) 예조정랑 겸 춘추관 기주관에 임명되어 《중종실록》편찬에 참여하였다. 이어서 홍문관 교리, 판결사 등을 지냈고 1555년(명종 10) 동지 겸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였다가 다시 경직으로 돌아와 병조참지, 병조참의, 예조참의 등을 거쳐 1574년(선조 7) 좌승지를 지냈다. 벼슬에서 물러나 백사면 송말리에서 은거 .. 2015. 5. 17.
(육괴정) 계산 오경, 의인 의성김씨 -해주오씨- 육괴정 계산 오경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경지(慶之)이고, 호는 계산(溪山)이다. 본관은 해주(海州)이고, 출신지는 한양(漢陽)이다. 부친은 예조좌랑(禮曹佐郞)을 지낸 오예손(吳禮孫)이고, 동생은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역임한 오상(吳祥)이다. 동생 오상과 함께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에게서 수학하였으며, 1531년(중종 26) 식년시 진사 3등 48위로 합격하였다. 이후 은둔하며 장동(長洞)의 시냇가에 살면서 동네 이름을 ‘미록(麋鹿)’이라 하고, 호를 ‘계산(溪山)’이라 하며 시냇가에서 거문고를 타고 시를 읊는 즐거움을 누렸다. 글 짓는 능력이 출중하였으며, 모재 김안국‧처사(處士) 엄용순(嚴用順)‧한림(翰林) 강은(姜溵)과 교유하면서 시를 주고받은 글이 『계산유고(溪山遺稿)』에 남아.. 2015. 5. 17.
(육괴정) 남당 엄용순, 부인 안동권씨 -영월엄씨- 육괴정 남당 엄용순 본관은 영월(寧越), 호는 남당(南塘)이다. 선공감 부정(副正)을 지낸 엄훈(嚴訓)의 아들이다. 중종 때 2명의 형과 함께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은거 생활을 하며 학문에 정진하였다. 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의를 숭상하며 학문에 조예가 깊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1519년(중종 13) 기묘사화로 스승인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 사림들이 대거 숙청되자, 연산군 때 갑자사화로 화를 당한 아버지의 묘가 있는 이천 도립리로 낙향하여 은거 생활을 하였다. 은거 생활 중 도립리에 육괴정이란 정자를 건립하였고, 당대의 명현 김안국을 포함한 5명의 선비와 함께 육괴정에 모여 세상을 등진 채 시회와 학문을 강론하며 우의를 다지고 도를 즐겼다. 이들 6명의 선비를 괴정육현이라고 부른다. 2015. 5. 17.
(육괴정) 규정 강은, 숙부인 전주이씨 -진주강씨- 육괴정 규정 강은 1492(성종 23)∼1552(명종 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청로(淸老), 호는 규정(葵亭). 이천 출신. 아버지는 자인(子仁)이다. 1510년(중종 5)에 생원·진사시에 합격하고 1519년 현량과(賢良科)에 삼등으로 급제하여 검열(檢閱)에 임용되었으나, 이해 기묘사화로 파방(罷榜 : 과거 시험의 급제자를 무효로 함)되었다. 1540년에 예빈시참봉이 되고, 1546년(명종 1)에 현량과가 복구되어 전적(典籍)에 올랐으나 사은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인종이 죽자 매일 의관을 정제하고 북향으로 꿇어앉아 울었으며 노후에는 김안국(金安國)과 더불어 학문을 강론하며 세월을 보냈다. 2015. 5. 16.
(육괴정) 모재 김안국 [문경공], 정경부인 전주이씨 -의성김씨- 육괴정 문경공 모재 김안국 1478(성종 9)∼1543(중종 38). 조선시대 문신·학자.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국경(國卿), 호는 모재(慕齋). 참봉 연(璉)의 아들이며, 정국(正國)의 형이다. 조광조(趙光祖)·기준(奇遵) 등과 함께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으로 도학에 통달하여 지치주의(至治主義) 사림파의 선도자가 되었다. 1501년(연산군 7) 생진과에 합격, 1503년에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되었으며, 이어 박사·부수찬·부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1507년(중종 2)에는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 지평·장령·예조참의·대사간·공조판서 등을 지냈다. 1517년 경상도관찰사로 파견되어 각 향교에 ≪소학≫을 권하고, ≪농서언해 農書諺解≫·≪잠서언해 蠶書諺解≫·≪이륜행실도언해 二倫.. 2015. 5. 16.
(육괴정) 두문산인 성담령 -창녕성씨- 육괴정 두문산인 성담령 본관은 창령(昌寧), 호는 두문산인(斗文山人) 또는 어조(漁釣)이다. 1452년(단종 원년) 교리를 지낸 성희(成熺)의 아들로 태어났다. 생육신 중 한 명인 성담수의 동생이다. 어린 나이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계유정난 때 일족이 모두 화를 당한 것을 비관하여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이천 신둔면으로 내려와 은거 생활을 하였다. 1519년(중종 13)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 등 신진 사림들이 숙청되자 당대의 명현 김안국을 비롯한 선비들이 이천으로 내려와 은거하게 되었고, 이천 도립리에 있는 육괴정에 모여 세상을 등진 채 시회와 학문을 강론하며 우의를 다졌다. 이때 모인 6명의 선비를 괴정육현(槐亭六賢)이라 부르는데 성담령도 이 중 한 사람이다. 평생을 청렴하게 살았으며 1523년(중.. 2015.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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