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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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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2

(성종대왕 왕자, 서울 은평구) 영상군 충희공 이전, 금릉군부인 청송심씨, 문성군부인 경주정씨 -전주이씨- 휘는 전(힜). 자는 공근(公謹), 시호는 충희(忠僖). 성종대왕의 13남이며 배위는 찬성(贊成) 심순로(沈順路)의 딸과 찬성 정홍선(鄭弘先)의 딸 및 주부(主簿) 황징(黃徵)의 딸이다. 진성대군(후의 중종대왕)이 잠저에 있을 때 연산군이 사냥을 핑계삼아 가해하고자 할 때 공은 충성과 기지와 용기로써 화를 면하였다. 그 때의 일로 `사람과 말이 때에 응했다'라는 노래가 있었다 한다. 1506년(중종 1) 가을 중형인 회산군(檜山君)과 종사의 위급함을 걱정하고 창읍고사(昌邑故事)를 논하고 몇몇 중신들과 종사 회복을 위한 은밀한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연산군이 성 밖으로 사냥갔다 환궁할 때, 공은 백관을 거느리고 화혜왕후(성종대왕 계비)의 명임을 일컬어 성문을 가로막고 연산군을 들이지 않았다. 결국 연산군은.. 2022. 11. 10.
(성종, 서울 은평구) 영상군 충희공 이전, 금릉군부인 청송심씨, 문성군부인 경주정씨 -전주이씨- 1490년(성종 21)∼1538년(중종 33).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전(李恮).성종(成宗)의 13남으로 모친은 숙용심씨(淑容沈氏)이다.영산군(寧山君)은 왕자 시절부터 현명하여 성종의 총애를 받았다. 그로 인하여 여러 번 역모 혐의를 받기도 하였다.『연려실기술』에는 영산군이 중종을 구한 이야기가 전해진다.연산군(燕山君)이 들에서 사냥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중종에게 말하기를, “나는 흥인문(興仁門)으로 들어가고 너는 숭례문(崇禮門)으로 들어가는데, 뒤에 온 자는 마땅히 군법에 따라 처리할 것이다.”라고 하자 중종이 매우 두려워하니, 영산군(寧山君)은 몰래 중종에게 아뢰기를, “근심할 것 없습니다. 나의 말이 승마(乘馬)보다 매우 날랩니다. 그러나 내가 아니면 통제할 수 없습니다.” 하고는 진산대군(.. 2022.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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