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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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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성씨5

(문신, 경기 화성시) 이와 홍한, 정부인 창녕성씨 -남양홍씨, 토홍- 조선전기 전한, 부제학, 이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온진(蘊珍). 홍자경(洪子儆)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익생(洪益生)이고, 아버지는 수군절도사 홍귀해(洪貴海)이며, 어머니는 민효열(閔孝悅)의 딸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1485년(성종 16) 별시 문과에 급제, 1490년 지평을 거쳐 1493년 헌납(獻納)이 되었다. 1495년(연산군 1) 응교(應敎)가 되고, 그 뒤 전한·부제학을 역임한 뒤 1498년 이조참의가 되었다.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김종직의 문인이라 하여 장형(杖刑)을 당한 뒤 경흥으로 유배가다가 도중에서 죽었다. 그 뒤 1504년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지난날 홍문관에 있을 때 연산군이 후원에서 활 쏘는 것을 관람한 일에 대해 논계(論啓)한 일이 들추어.. 2022. 11. 9.
(세조) 덕원군 이서 [소간공], 임천군부인 경주김씨, 봉산군부인 함안유씨, 안성군부인 청주양씨, 창녕군부인 창녕성씨 -전주이씨- 덕원군 소간공 이서 덕원군의 휘는 서(曙), 자는 정수(晶첤)이며 호는 종덕암(宗德菴), 시호는 소간(昭簡)이다. 근빈 선산박씨에게서 태어났다. 세조대왕의 왕자이며 10세에 덕원군에 책봉되었다. 덕원군은 1455년(단종 3) 7세 때 어머니 근빈 박씨를 여의고 부왕의 총애를 받으며 자랐다. 1462년(세조 8) 14살에 이미 혼인하여 사제(私第) 60여 칸을 하사받아 이 때부터 궁궐밖 건천동(乾川洞)에서 생활하였다. 효심이 지극하여 부왕을 정성껏 모셨으며 임금이 거둥시에는 항시 배행(陪行)하였다. 하루는 부왕이 온양온천에 행행할 때 종덕(宗德)에 잠시 머무르니 군이 부왕앞에 나가 이 곳 땅을 내려주실 것을 아뢰어 허락하니, 원래 이 곳은 나라에서 지표(地標)를 묻은 곳이라 이 곳 수구(水口)에 긴뚝을 쌓.. 2016. 8. 21.
(문신) 정당 유여림[경안공], 정부인 창녕성씨 -기계유씨- 경안공 정당 유여림 1476(성종 7)∼1538(중종 3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계옥(啓沃), 호는 정당(政堂). 집(輯)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해(解)이고,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기창(起昌)이며, 어머니는 능주구씨(綾州具氏)로 훈련원참군(訓鍊院參軍) 안우(安愚)의 딸이다. 1498년(연산군 4) 사마시에 합격, 1504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의 검열·봉교, 성균관의 전적·직강을 거쳐 단양과 한산의 군수를 지냈다. 그 뒤 홍문관직제학·전라도관찰사·도승지 등을 역임하고, 1526년(중종 21) 사헌부대사헌이 되고 홍문관부제학을 거쳐 1529년 형조판서가 되었으나 2년 뒤인 1531년김안로(金安老)의 탄핵을 받아 삭직되었다. 1537년김안로가 축출되자 예조판서에 복.. 2016. 3. 6.
(육괴정) 두문산인 성담령 -창녕성씨- 육괴정 두문산인 성담령 본관은 창령(昌寧), 호는 두문산인(斗文山人) 또는 어조(漁釣)이다. 1452년(단종 원년) 교리를 지낸 성희(成熺)의 아들로 태어났다. 생육신 중 한 명인 성담수의 동생이다. 어린 나이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계유정난 때 일족이 모두 화를 당한 것을 비관하여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이천 신둔면으로 내려와 은거 생활을 하였다. 1519년(중종 13)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 등 신진 사림들이 숙청되자 당대의 명현 김안국을 비롯한 선비들이 이천으로 내려와 은거하게 되었고, 이천 도립리에 있는 육괴정에 모여 세상을 등진 채 시회와 학문을 강론하며 우의를 다졌다. 이때 모인 6명의 선비를 괴정육현(槐亭六賢)이라 부르는데 성담령도 이 중 한 사람이다. 평생을 청렴하게 살았으며 1523년(중.. 2015. 5. 16.
(문신, 사육신) 매죽헌 성삼문 [충문공] -창녕성씨- 충문공 매죽헌 성삼문 성삼문(成三問, 1418년 ~ 1456년 6월 8일)은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로서,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세종대왕을 도와 집현전에서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였고, 단종 복위 운동을 추진하였다. 자는 근보(謹甫)·눌옹(訥翁), 호는 매죽헌(梅竹軒), 시호는 충문(忠文), 본관은 창녕이다. 성승(成勝)의 아들이며, 성달생의 손자이다. 생원으로 1438년 과거에 급제하여 집현전 학사의 한사람으로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했고, 1447년 중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1450년 어린 세손을 부탁한다는 세종의 유지를 받들다가 세조 찬위 이후 단종 복위 운동을 주관하였으나, 신숙주, 정인지 등이 세조의 편에 서고 김질 등이 밀고함으로써 실패하고 만다. 그는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 때 신숙주와 함께 .. 2015.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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