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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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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종어씨5

(무신, 충북 음성군) 성순 어재순 -함종어씨, 신미양요- 조선후기 신미양요 당시의 장수.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성순(聖淳). 어용인(魚用仁)의 아들이며, 신미양요 때 진무중군(鎭撫中軍)으로서 순국한 어재연(魚在淵)의 아우이다. 어재순은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홀로 대소가를 지키며 은거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신미양요가 발생, 형 어재연이 진무중군이라는 막중한 중책을 지고 광성보(廣城堡)에 농성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이에 분연히 궐기, 형을 따라 미군을 격퇴할 결심을 굳히면서 백의종군을 선언하자, 일가친지들은 지금 강화도에는 적선이 바다를 메워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생사는 하늘에 달려 있으니 적이 두려워서 어찌 나라를 구하는 일을 못하랴.”라고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광성보로 달려갔다. 어재연 중군이 아우 어재순을 보고 “너는 궁벽한 고.. 2022. 9. 23.
(문신, 경기 남양주시) 도곡 문간공 이의현, 정경부인 함종어씨, 정경부인 은진송씨, 정경부인 전주류씨 -용인이씨, 우의정, 영의정- 조선후기 형조판서, 우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덕재(德哉), 호는 도곡(陶谷). 이후천(李後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정악(李挺岳)이다. 아버지는 좌의정 이세백(李世白)이며, 어머니는 정창징(鄭昌徵)의 딸이다. 김창협(金昌協)의 문인으로 문학(文學)에 뛰어나, 숙종 때 대제학(大提學) 송상기(宋相琦)에 의해 당대 명문장가로 천거되었다. 1694년(숙종 20)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검열(檢閱)·설서(說書)·정언(正言)·금성현령(金城縣令)·부교리(副校理)를 거쳐 1707년 이조정랑, 이어 동부승지·이조참의·대사간을 역임하였다. 1712년 다시 이조참의가 되었으나 판서 윤덕준(尹德駿)과의 불화로 부제학으로 옮겨 그 뒤 대사성을 지냈으며, 황해도관찰사로 2년여 재임한.. 2022. 6. 14.
(문신) 자수 권경우, 정부인 함종어씨 -안동권씨- 자수 권경우 생몰년 미상.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수(子綏). 집지(執智)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영화(永和), 아버지는 판관 질(耋), 어머니는 우참찬 이승손(李承孫)의 딸이다. 동생이 대사헌 경희(景禧)와 이조정랑 경유(景裕)이다. 1470년(성종 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뒤에 예문관봉교로 승진해 사관 선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듬해에는 천추사(千秋使)의 검찰관으로 중국에 다녀오면서, 통사(通事) 조종손(趙宗孫) 등의 밀무역을 검찰한 공로로 4계급 승진해 사간원정언이 되었다. 이어서 홍문관수찬으로 옮겨 제주경차관(濟州敬差官)으로서 제주도민의 궁핍현상을 지적하고, 그 대책의 강구를 요청하였다. 이듬해 다시 사간원정언이 되어 임사홍(任士洪)이 국정을 .. 2016. 4. 23.
(무신) 성순 어재순 성순 어재순 1826(순조 26)∼1871(고종 8). 조선 후기의 무장.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성순(聖淳). 용인(用仁)의 아들이며, 신미양요 때 진무중군(鎭撫中軍)으로서 순국한 재연(在淵)의 아우이다. 그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홀로 대소가를 지키며 은거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신미양요가 발생, 형 재연이 진무중군이라는 막중한 중책을 지고 광성보(廣城堡)에 농성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이에 분연히 궐기, 형을 따라 미군을 격퇴할 결심을 굳히면서 백의종군을 선언하자, 일가친지들은 지금 강화도에는 적선이 바다를 메워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생사는 하늘에 달려 있으니 적이 두려워서 어찌 나라를 구하는 일을 못하랴.”라고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광성보로 달려갔다. 어재연 중군이 아우 .. 2013. 3. 6.
(무신) 성우 어재연 [충장공] 충장공 성우 이재연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성우(性于). 아버지는 용인(用仁)이다. 1841년(헌종 7) 정시무과에 급제한 뒤 훈련원주부·판관·첨정·총위영초관·형조정랑을 역임한 뒤 1847년 광양현감이 되었다. 재임시 환곡 업무를 공정히 처리하고, 옥사를 잘 다스렸으며, 군기수선을 잘 하여 통정대부로 승급되었다. 1856년(철종 7) 해주진영(海州鎭營) 병마절도사를 거쳐 풍천부사가 되었다. 1862년 대구영장을 거쳐 1864년(고종 1) 장단부사가 되어 공정한 과세를 위해 힘써 고종에게서 표리(表裏)를 하사받았다. 1866년 공충도병마절도사가 되었는데, 그해 프랑스 로즈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해오자, 병사를 이끌고 광성진(廣城鎭)을 방어했다. 이어 회령부사가 되어 도적들을 토벌하고, 관내의 개시(開市).. 2013.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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