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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이필주 - 민족대표 33인

by 보현당 2014.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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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이필주

 

이필주 [李弼柱, 1869.12.9~1942] 한말의 독립운동가,목사. 기독교청년회(YMCA) 상동 공옥 소학교 교사로 신생활운동을 전개하였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었다. 목회활동과 야학 개설 등 육영사업에도 힘썼다. 신사참배 거부 등 일제에 항거하였다. 1869년 12월 9일 경기도 고양(高陽)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한문을 배우고, 20세 때 구(舊)한

국군에 들어가 8년간 장교로 근무하였다. 1907년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상동(尙洞)교회 목사 전덕기(全德基)를 중심으로 하는 상동청년회에 가입, 그리스도교도가 되었다. 이어 기독교청년회(YMCA)에 들어가 상동 공옥(攻玉)소학교의 체육교사로 근무하면서 미신타파, 계급차별의 배격, 자립정신의 고취 등을 표방하고 신생활운동을 전개하였다. 그후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왕십리교회·정동(貞洞)교회 등에서 목회활동을 하면서 이상재(李商在)·최병헌(崔炳憲) 등과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다가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미아리·청파동·용두동·신촌 등의 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하면서 부설 유치원·소학교·부녀자를 위한 야학 등을 개설하여 육영사업에도 힘썼다. 후에 노령으로 서울을 떠나 수원 남양교회에서 교역에 종사하면서 신사참배(神社參拜)를 거부하는 등 일제에 항거하다가 병으로 사망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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