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성부원군 익경공 정탁
1363(공민왕 12)~ 1423(세종 5)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여괴(汝魁)·축은(築隱), 호는 춘곡(春谷). 아버지는 정당문학 추(樞 : 초명은 公權)이다. 1382년(우왕 8) 문과에 급제하여 춘추관수찬·사헌부규정·좌정언·호조좌랑·병조좌랑 등을 지냈다. 병조좌랑으로 있을 때 척불(斥佛)한 죄로 극형을 받게 된 김초(金貂)를 정몽주(鄭夢周)와 함께 구했다. 조선 개국 후 1392년(태조 1) 사헌부지평·성균관사예를 거쳐 대장군이 되었고, 이성계의 추대를 제일 먼저 발의한 공로로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1393년 문하부직문하(門下府直門下), 이듬해에는 대사성이 되었다. 1396년 중추원우승지로 있을 때 전년에 그가 쓴 표전(表箋)이 불손하다고 하여 명나라로 압송되었으나 명 황제에게 해명을 하고 돌아왔다. 이후 좌승지를 거쳐 1398년 도평의사사(都評議司事)로 청성군(淸城君)에 봉해졌다. 같은 해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이방원(李芳遠)을 도운 공로로 정사공신(定社功臣) 2등에 책록되었고, 이어 첨서중추원사(簽書中樞院事)와 예문관·춘추관의 태학사(太學士)를 거쳐 정당문학·지의정부사·삼사우사로 승진했다. 1403년(태종 3) 판한성부사가 되었는데, 1405년 살인죄로 직첩을 몰수당하고 영해부(寧海府)로 유배되었으나 공신이었으므로 곧 풀려났다. 이후 개성유후사유후(開城留後司留後)를 거쳐 1408년 태조가 죽자 태조의 죽음을 알리고 시호를 청하기 위해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이듬해에 세자좌빈객(世子左賓客)이 되었다. 1414년 참찬의정부사가 되었고, 이듬해 정조사(正朝使)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에 진봉되었다. 1421년(세종 3) 진하사(進賀使)의 자격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우의정에 올랐다. 태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익경(翼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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