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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 묘

(문신) 동암 이발, 정부인 말양박씨 -광산이씨-

by 보현당 2016.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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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경함(景涵), 호는 동암(東巖)·북산(北山). 증조할아버지는 상의원정(尙衣院正)과 지제교(知製敎)를 지낸 이달선(李達善)이고, 할아버지는 홍문관박사를 지낸 이공인(李公仁)이며, 아버지는 승정원도승지와 이조참판·전라도관찰사를 역임한 이중호(李仲虎)이다. 부인은 박이(朴苡)의 딸이다. 이발(李潑)[1544~1589]은 1573년(선조 6) 알성 문과에 장원하였으며 이듬해에 사가독서(賜暇讀書)한 후 이조정랑과 사헌부장령을 지냈다. 1579년(선조 12) 응교에서 1581년(선조 14) 홍문관전한을 거쳐 1583년(선조 16) 홍문관부제학을 지내다가 이듬해 사간원대사간을 역임하였다. 김근공(金謹恭)민순(閔純)에게 수학하였으며, 홍가신(洪可臣)·최영경(崔永慶)·김우옹(金宇顒)·허당(許鐺)·박의(朴宜)·윤기신(尹起莘) 등과 교유하였다. 이발은 동인의 거두로, 서인의 거두인 정철(鄭澈)과 대립이 심하였으며, 정철의 처벌에 관한 문제가 대두될 당시 강경파를 이끌어 북인의 수령이 되었다. 이 일로 동인과 서인의 분당적 요소를 화해하려 하였던 이이(李珥), 성혼(成渾) 등과 교분이 멀어져 서인의 미움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1584년(선조 17) 이이가 세상을 떠난 뒤 서인의 거두 심의겸(沈義謙)을 탄핵하고 파직시키며 동인의 거두로서 동인 정권을 유지시키지만,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을 계기로 일어난 기축옥사에서 모반에 가담하였다 하여 모진 고문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이때 82세의 노모와 8세의 아들도 형벌 끝에 죽음을 당하였는데, 노모는 형벌이 너무 지나치다며 꾸짖었고 정여립 모반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일의 전말에 대하여 승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발은 인조반정 후 영의정 이원익(李元翼)의 상소로 신원되었다.                           

                                       <<자료출처 : 광명문화대전 내용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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