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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경언 류덕신, 정부인 당진한씨 -문화류씨-

by 보현당 2016.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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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언 류덕신

 1548년(명종 3)~1617년(광해군 9). 조선 중기 관리. 자는 경언(敬彦)이다. 본관은 문화이다. 부친은 공조판서(工曹判書) 유잠(柳潛)이다. 형은 문양부원군(文陽府院君) 유자신(柳自新)이다. 관직은 임천군수(林川郡守)‧온양군수(溫陽郡守)‧사복시첨정(司僕寺僉正)‧옥천군수(沃川郡守)‧중화부사(中和府使)‧돈령도정(敦寧都正)‧연안부사(延安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1599년(선조 32) 임천군수에 재직하면서 고을의 향교를 개축해줄 것을 충청감사(忠淸監司)에게 청하였다. 1605년(선조 38)에는 온양군수를 역임하였는데, 그에 대한 백성들의 비난과 원망이 많았으며, 이미 혼인한 딸을 출가시키지 않고 데리고 있다가 충청도안문어사(忠淸道按問御史) 성진선(成晉善)에 의해 이러한 사실이 조정에 보고되었다. 또한, 1606년(선조 39)에는 옥천군수를 역임하고 있었는데, 양계(兩界)의 관기를 불법으로 데려다가 거느린 죄로, 사헌부(司憲府)에서 그를 파직하여 추고할 것을 청하자 임금이 윤허하였다. 1612년(광해군 4) 형인 유자신이 1등급의 훈신이 됨에 따라 그 또한 가자(加資)되어 돈령도정에 제수되었다. 그러자 사헌부가 반대하여 개정할 것을 청하였으나, 윤허받지 못하였다. 1617년(광해군 9) 유덕신(柳德新)이 사망하자 광해군이 정해 놓은 대례(大禮)의 날짜를 늦출 것을 명하였는데, 이 일로 사헌부에서 명을 거둘 것을 청하였으나 윤허받지 못하였다. 슬하에 6남 5녀와 서자 둘을 두었는데, 아들은 첨지(僉知) 유희성(柳希成)‧돈령도정 유희로(柳希老)‧현감(縣監) 유희설(柳希契)‧첨정(僉正) 유희익(柳希益)‧유희연(柳希衍)‧유희윤(柳希尹)이다. 사위는 금산군(錦山君) 이성윤(李誠胤)‧평안감사(平安監司) 박엽(朴燁)‧부사(府使) 이대득(李大得)‧도정(都正) 양의(梁懿)‧감역관(監役官) 김석(金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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