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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 묘

(문신) 문경공 휴암 백인걸, 정경부인 순흥안씨 -수원백씨-

by 보현당 2016.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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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고 휴암 백인걸

조선의 유학자. 자는 사위(士偉), 호는 휴암(休庵), 王子 師傅(왕자사부) 益堅(익견)의 아들, 仁豪(인호)의 아우. 趙光祖(조광조)의 문인. 1519년(중종14) 己卯士禍(기묘사화)에 스승과 동지를 모두 잃고 금강산에 입산, 그후 돌아와 1537년 式年文科(식년문과)에 丙科(병과)로 급제, 成均館(성균관)에 오래 머무르다가 檢閱(검열)·禮曹 佐郞(예조좌랑)·南平 縣監(남평현감)·戶曹 正郞(호조정랑)·持平(지평)·獻納(헌납)을 역임했다. 1545년(명종 즉위) 乙已士禍(을사사화) 때 尹元衡(윤원형) 등 小尹(소윤)의 미움을 사서 파면되고, 1547년 良才驛(양재역) 壁書(벽서) 사건에 다시 연루되어 安邊(안변)에 유배되었다. 1551년 풀려나와 오랫동안 고향에 은거하다가 윤원형이 죽자 복직, 1567년(명종22) 71세의 나이로 校理(교리)가 되었다. 조선 때 直提學(직제학)·吏曹 參判(이조참판)·대사간·대사헌을 거쳐, 공조 참판으로서 同知經筵事(동지경연사)·同知義禁府事(동지의금부사)를 겸임, 다시 대사헌이 되어 權臣(권신)들을 논핵하다가 사임했다. 1578년(선조11) 右參贊(우참찬)에 임명되었으나 사퇴, 이듬해 東西 分黨(동서분당)의 폐단을 논하고 군비 강화를 강조했다. 선조 때 淸白吏(청백리)에 錄選(녹선)되었으며 학문에 뛰어났다. 南平(남평)의 蓬山書院(봉산서원), 坡州(파주)의 坡山書院(파산서원)에 祭享(제향), 初諡(초시)는 忠肅(충숙), 改諡(개시)는 文敬(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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