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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군파) 벽계도정 이종숙, 신부인 해평윤씨 -전주이씨-

by 보현당 2016.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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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諱)는 종숙(終叔), 호(號)는 현옹(玄翁). 길안도정의 5남이며 어머니는 현부인 여산송씨이다. 품계는 명선대부(明善大夫)에 올랐다. 젊었을 때부터 절조 있는 행실(行實)로 생활해 오며 학문에 독실(篤實)하였다. 당시의 혼탁한 세상에 분개하여 이를 사물에 빗대어 풍자적인 시가를 읊어 회포를 풀었다. 중종대왕 때 시산군 · 강녕군과 함께 성리학(性理學)을 연구하였고 백성(百姓)을 올바르게 잘 다스리도록 하는 글을 지어 밀봉 상소하였고 또 연명의 글로 억울하게 유배된 박상(朴祥) · 김정(金淨)의 석방을 상소하였다. 그당시 사람들은 중국 전한시대 학자(學者)이며 충신이었던 유향(劉向)에 비유하였다. 12세 때 기묘사화(己卯士禍)와 14세 때 신사무옥으로 큰 화를 입었다. 1542년(중종 37) 35세 때 행직(行職)으로 관찰사(觀察使) 지방관이 되었다.

벽계도정에 관한 일화를 소개하면, 중종대왕 때의 명기 황진이(黃眞伊)의 시,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 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에서 벽계수는 바로 벽계도정을 가리킨다. 기명이 명월인 황진이는 송도를 찾아 온 벽계수를 애인으로 섬기고 이같은 시조 1수로 사랑을 노래해 벽계수를 도취시켰다는 것이다. 배위(配位)는 신부인(愼夫人) 해평윤씨 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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