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완군 문간공 이정응
흥완군 이정응(興完君 李晸應, 1814년 2월 16일 ~ 1848년 5월 18일)은 조선 시대의 문신, 왕족이다. 은신군의 양손자이며 남연군 이구와 군부인 여흥 민씨의 둘째 아들이다. 흥인군, 흥선대원군의 형이며 흥녕군의 동생이다. 1865년 9월 14일 신정왕후 조대비의 명으로 특별히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처음 이름은 시응(是應)이었다. 자는 시백(眂伯), 시호는 문간(文簡). 흥완부정에 봉작된 뒤 도정으로 진봉되었고, 효명세자묘 수원관, 순조 사후 산릉도감과 빈전 대전관, 오위도총부 도총관 등을 역임했다. 1844년에는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현록대부에 이르렀다. 조카 고종 즉위 후 신정왕후의 특명으로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은신군의 양자인 남연군 이구와 선공감감역 증 우의정 민경혁의 딸 군부인 여흥민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흥녕군 창응은 그의 형이고, 흥선대원군 하응과 흥인군 최응은 그의 동생들이었다. 아버지 남연군 이구는 인평대군 이요의 7대손으로, 호적상 능원대군의 8대손이 된다. 아버지 남연군 이구가 은신군의 양자로 입양되면서 그는 사도세자의 증손자이자, 조선 숙종숙종의 일곱째 서자 연령군의 4대손도 된다. 1829년(순조 29) 1월 1일 흥완부정(興完副正)에 봉작되었다. 1831년 흥완부정에 봉작되고, 1832년 흥완도정으로 승진되었으며 동궁 효명세자묘의 수원관을 맡아보았다. 1833년 소의대부를 받고 군으로 진봉되었다. 1834년 11월 순조 사후 산릉도감과 빈전의 대전관(代奠官)으로 참여하여 1835년 상을 받았다. 1836년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임명되었다가 그해 남연군이 사망하였다. 3년상을 마친 뒤 다시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임명되고, 1844년 10월 동지정사로 청나라의 연경에 다녀왔다. 본처 대구서씨에게서 아들 이재원(李載元)을 얻었지만, 남연군, 은신군, 낙천군, 연령군의 제사를 받들어야 되었기 때문에, 생전 자녀 없이 죽은 형 흥녕군의 양자로 보냈다. 대신 그는 사후 선조의 아홉째 서자 경창군 이주의 후손 이신응의 아들 이재완(李載完)을 사후양자로 들이게 된다. 후처인 순천박씨에게서는 소생이 없다. 최종 관직은 현록대부에 이르렀다. 1848년 5월 18일 정침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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