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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묘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이성수

by 보현당 2016.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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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열사 이성수


약력 
1959년 9월 1일 경기시흥 출생 
2008년 2월 용인신봉 철거민 대책 위원회 건설. 
2009년 1월 19일 새벽 철거민 생존권 쟁취를 위해, 용산 남일당 건물 옥상 망루농성 돌입. 
2009년 1월 20일 새벽 경찰특공대의 무자비한 살인진압으로 사망. 당일 시신 강제부검 당함. 
2010년 1월 9일 355일 만에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을 치름. 

동지의 삶과 죽음 
유난히 사람을 좋아하던 이성수 열사는 2007년, 용인 수지에서 13년을 살아오던 집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하루아침에 철거당했다. 13년 전에도 강제철거 당해 쫓겨났는데, 두 번째 강제철거를 당한 것이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자녀가 돌아오니 집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뻥튀기’ ‘즉석 생과자’를 파는 노점으로 가정을 일궈오던 열사는, 노점단속과 탄압에 시달려오던 삶도 원망스러운데, 가족의 삶터인 집마저 빼앗긴 것에 분노하였다. 
부서진 집에서라도 쫓겨날 수 없다며, 천막을 짓고 살면서 주거권 쟁취를 위해 투쟁하였다. 노점상 투쟁에도 앞장섰고, 전철연에 가입하여 다른 지역 철거투쟁과 사회 문제들에 대한 투쟁에 연대하면서, 반드시 투쟁에서 승리하여 주거권을 쟁취할 것을 다짐하였다. 2009년 1월 19일, 열사는 자신과 다르지 않은 처지에 놓인 용산 철거민들의 망루 투쟁에 연대하고자 함께 남일당 옥상 ‘망루’에 올랐다. 그러나 ‘여기, 사람이 있다’는 이들의 외침은, 만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경찰특공대가 투입되어 진압하였고, 무자비한 살인진압과정에서 대형 화재참사가 발생하여 사망하셨다. 2010년 1월 9일, 355일 만에 치러진 장례 후에야, 이곳 모란공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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