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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묘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한대성

by 보현당 2016.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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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열사 한대성


1956년 6월 14일 강원화천 출생
2008년 6월  수원신동 철거민 대책 위원회 건설
2009년 1월 19일 새벽 철거민 생존권 쟁취를 위해, 용산 남일당 건물 옥상 망루농성 돌입.
2009년 1월 20일 새벽 경찰특공대의 무자비한 살인진압으로 사망. 당일 시신 강제부검 당함.
2010년 1월 9일 355일 만에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을 치름.
 

동지의 삶과 죽음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고 가정을 꾸린 한대성 열사는, 가난이 대물림될까 두려워 강원도에서 나와 수원에 일자리를 얻었다. 수원 변두리 논밭 가운데 위치한 작은 마을 신동으로 이사와 20년을 살아왔다. 그리고 결혼 10년 만에야 월세 단칸방을 벗어나 이웃에 있던 아담한 독채로 옮겨 살며, 가진 것 없지만 행복한 가정을 일구며 살아왔다. 평소에 말이 없고 조용하던 열사의 삶은 2007년부터 수원시에서 시작한 ‘신동지구 도시개발사업’으로 인해 절망하게 되었다. 논밭을 사이에 있는 보증금 500만원 내외인 작은 농가주택 동네라, 보상비 몇 푼으로는 도저히 갈 곳을 찾을 수 없었다. 2008년 6월 동네 주민들과 함께 철거민대책위원회를 세우고, 주거권을 쟁취하기위한 투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집을, 주거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20년을 다니던 일자리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여기저기 연대집회를 다니며, 자신 보다 힘든 이들의 삶에 눈을 뜨게 되었다.  2009년 1월 19일, 열사는 자신과 다르지 않은 처지에 놓인 용산 철거민들의 망루 투쟁에 연대하고자 함께 남일당 옥상 ‘망루’에 올랐다. 그러나 ‘여기, 사람이 있다’는 이들의 외침은, 만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경찰특공대가 투입되어 진압하였고, 무자비한 살인진압과정에서 대형 화재참사가 발생하여 사망하셨다.  2010년 1월 9일, 355일 만에 치러진 장례 후에야, 이곳 모란공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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