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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묘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이상림

by 보현당 2016.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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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열사 이상림


약력
1938년 12월 20일 충남당진 출생
2007년 11월    용산 4지구 세입자 철거민 비상대책위원회 건설.
2008년 3월     용산 4지구 상공철거민 대책 위원회 건설, 철거반대투쟁 전개.
2009년 1월 19일 새벽 철거민 생존권 쟁취를 위해, 용산 남일당 건물 옥상 망루농성 돌입.
2009년 1월 20일 새벽 경찰특공대의 무자비한 살인진압으로 사망. 당일 시신 강제부검 당함.
2010년 1월 9일 355일 만에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을 치름.
 

동지의 삶과 죽음 
이상림 열사는 1986년부터 용산구 한강로 2가에서 ‘한강갈비’집을 운영, 1993년부터 같은 자리에 막내아들 내외와 함께 ‘레아호프’로 업종 변경하여, 20여 년간 한 곳에서 장사를 하며 살아오셨다. 가게 위 비좁은 옥탑에서 생활하면서도, 아들내외와 일구는 가게에 온갖 정성을 쏟아가며, 하루하루 열심히 가족을 위해 살아오셨다. 그런 그의 평범한 소시민으로서의 삶은 2007년 경 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레아호프가 있는 한강로2가가 ‘도시환경정비사업지구’로 지정, 사업시행인가와 관리처분인가가 나게 되면서, 철거용역 깡패들에 의한 협박과 폭행, 영업방해로 세입자들이 대책 없이 쫓겨나기 시작하자, 열사는 잘못된 개발의 현실을 깨닫고 분노하셨다. 이에 이상림 열사는 철거민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2008년 3월 전국철거민연합 산하의 ‘용산4지구 상공철거민 대책위원회’를 건설, 노구에도 불구하고 초대 위원장을 맞으며, 대책 없는 강제철거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하셨다.  2009년 1월 19일, 이상림 열사는 구청의 외면과 조합과 용역의 폭력에 내몰리던 세입자들과 레아호프 옆 남일당 옥상에 ‘망루’를 짓고, “여기, 사람이 있다”, “대책 없는 살인개발 중단하라”, “철거민 주거,생존권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점거농성에 돌입하였으나, 만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경찰특공대가 투입, 무자비한 살인진압과정에서 대형 화재참사가 발생하여 사망하셨다.   2010년 1월 9일, 355일 만에 치러진 장례 후에야, 이곳 모란공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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