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중추부사 효부 정충석
1406~1473 자는 효부(孝夫). 정도공 역(易)의 둘째아들 음직에 의하여 1424년 수의부위좌군 부사정에 임명된 이후 1438년 사헌부 감찰, 1445년 한성부 판관, 1451년 한성부 소윤, 1457년 판군자감사를 역임하였다. 1464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오고 1466년(세조12년)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使事)에 올랐다. 배위는 문충공 정몽주(鄭夢周)의 손녀이다.
정충석(鄭忠碩) *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 同知中樞府使) 정공(鄭公) 묘표음기 (墓表陰記) 성은 정이요, 이름은 충석(忠碩)이요, 자는 효부(孝夫)요, 본은 해주다. 아버님의 이름은 역(易)이니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영의정에 추증되고, 의정부 찬성 벼슬을 지냈으며 시호는 정도공(貞度公)이다. (중략). 정도공께서 안동의 대성인 선무장군(宣武將軍) 제군만호(諸軍萬戶)겸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 권사종(權嗣宗)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영락 4년 병술 (1406) 6월 정축일에 공을 낳았다. 갑진(1424)년에 수의부위좌군(修義副慰左軍) 부사정(副司正)에 임명되었는데 이듬해 아버님 상을 당하고, 무신(1428)년 3월 8일에 어머님 상을 당했다. 임자(1432)년에 무공랑(務功郞) 의영고직장(義盈庫直長)에 임명되어 전구서령(典廐署令)과 사섬시(司贍寺)의 주부(主簿)를 거쳐 무오(1438)년에 사헌부 감찰로 승진되어, 중군 부사직(中軍副司直)겸 중추원 도사정(都事政)겸 형조 도관좌랑(都官佐郞)으로 옮겼다가 의영고사(義盈庫使)로 전임되었다. 을축(1445)년에 천령현감(川寧縣監)으로 나갔다가 들어와 한성부 판관(判官)에 임명되어 형조 도관정랑과 수내자소윤(守內資少尹)에 전임되었다. 신미(1451)년에 조봉대부(朝奉大夫)로 품계가 올라 한성부 소윤이 되고, 지통례문사(知通禮門事)를 거치게 되었다. 정축(1457)년에 통정대부로 품계가 올라 판군자감사(判軍資監事)가 되고, 판제용사재감사(判濟用司宰監事)로 옮겼다가 경진(1460)년에 공주 목사(公州牧使)로 나갔었는데 임기가 차서 첨지 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로 옮기게 되었고, 병술 (1466)년에 품계가 가선대부로 올라 동지사(同知事)로 승진되었다. 계사(1473년) 7월 8일에 병환으로 댁에서 세상을 마치니 그 때 나이 68이었다. 공은 성품이 순박하고 근신하여 말과 웃음이 적고, 안팎의 여러 벼슬을 역임하며 청렴과 근신으로 직책을 다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정도공과 권부인이 말년에 모두 병환으로 여러 해 병상에 누워 있는지라, 간호하는 사람들이 무척 게으른 빛을 보였으나 공만은 홀로 밤낮으로 옆을 떠나지 않으며 몸소 오줌 그릇을 받들고 혹은 속옷과 이불을 가져다가 손수 이를 잡기도 했다. 맛있는 음식과 약을 드리는 데 일찍이 조금도 게을리 함이 없으니 온 집안사람들이 그 지극한 효성에 감복했었다. 부인 영일정씨는 고려 충신이요 문하시중(門下侍中)이었던 문충공(文忠公) 정몽주(鄭夢周)선생의 손녀요. 이조 참의 종성(宗誠)의 따님이며 보문각(寶門閣) 직제학 박중용(朴仲容)의 외손녀다. 무자(戊子 :1468)년 11월 갑자일에 나서 13살에 공에게로 시집왔는데 아내와 어머니로서 하는 일이 다 모자람이 없었다. 을유(1465)년 7월 27일에 공보다 먼저 세상을 뜨니 나이 58이었다. 그 해 9월 29일에 양주(楊州) 어룡성산(魚龍城山)에 장례를 모셨다가, 공이 돌아가시자 아들들이 널을 옮겨 갑오 (1474)년 1월 6일에 과천(果川) 북쪽 백석동(白石洞)으로 합장하여 남향 (壬坐)터정도공의 묘소 좌편 언덕에 모시게 되었다.부인이 여섯 아들 과 세 딸을 낳으니 맏아들침( ) 은 호조참의를 지냈고,둘째아들 흔( )은 사섬시(司贍寺) 첨정(僉正)을 지냈는데, 모두 문학(文學)으로 과거에 올랐었다. 다음 염(恬)은 낭천현감(狼川懸監)을 지냈는데, 변( )과 연(憐)이 더불어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했다. 맏딸은 예조판서 양성군(陽城君) 이승소(李承召)에게 시집가고, 다음은 서령(署令) 진유(陳猷)에게 시집갔으며, 다음은 판관 김영추(金永錘)에게 시집갔다.(중략) 아! 장하도다. 자손들이 재주있고 또 많음이여! 이를 보면 공과 부인께서 덕을 쌓고 복을 쌓으심이 컸음을 알 수 있도다. 갑오(1474년) 1월 사위 예조판서 겸 예문관 제학 양성군 이승소(李承召) 삼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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