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공 황산 김유근
김유근(金逌根, 1785년~1840년)은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시인, 화가, 문신으로 예조판서, 병조판서, 판돈령부사를 지냈다. 글씨·그림·시 등 다방면에 뛰어났으며, 특히 바위를 잘 그렸다. 안동 김씨 세도 정권의 기틀을 다진 영돈령부사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증 의정부영의정 김조순(金祖淳)의 장남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字)는 경선(景先), 호(號)는 황산(黃山),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1810년, 식년시에 급제하였으며 사서·검상 등을 지냈다. 그뒤 당상관으로 승진하여 1817년 이조 참의, 1819년에는 대사성을 거쳐 홍문관 부제학이 되었다. 이후 이조 참판 · 대사헌이 되었으며, 역임하였다. 1822년에 이조참판, 1825년 사헌부대사헌 등으로 등용되었다. 1826년에는 한성부 판윤을 지내고 1827년에는 평안도관찰사로 부임하였으나 부임 도중, 한 전직 관원의 면회를 거절하였다. 그러나 면회를 거절당한 것에 앙심을 품은 전직관원에 의해 부임 도중 피습, 일행 5명이 흉변을 당하여 공은 부임을 취소하고 되돌아왔다. 그 뒤에도 병조판서와 돈령부판사(종일품)를 역임하였고 1830년에는 다시 한성부 판윤으로 등용되었으며 아버지 김조순이 사망한 뒤 실권자가 되었다. 1834년 순조(純祖)가 승하하자 《순조대왕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후 순조가 붕어하고 어린 헌종(憲宗)이 즉위하자 헌종(憲宗)과 자신의 누이동생인 순원왕후(純元王后)를 성심껏 보필하여 헌종(憲宗) 초기의 안동 김씨 세도 정권을 이끌었다. 천주교에 호의적이었으며 사망하기 1년 전인 1839년에는 유진길(劉進吉)의 권유로 세례를 받기도 하였다. 또한 이때 천주교의 박해를 빌미로 기해박해가 일어나 보수적인 벽파 계열의 풍양 조씨가 집권하고 시파 계열의 안동 김씨는 세도 가문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1840년에 사망하였으며 사후 문정(文貞)의 시호가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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