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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군)묘

(의친왕 배위) 수인당 김씨

by 보현당 2022.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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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adangca.tistory.com/entry/%EA%B3%A0%EC%A2%85-%EC%9D%98%EC%B9%9C%EC%99%95-%EB%A7%8C%EC%98%A4-%EC%9D%B4%EA%B0%95-%EC%9D%98%EC%B9%9C%EC%99%95%EB%B9%84-%EC%97%B0%EC%95%88%EA%B9%80%EC%94%A8-%EC%A0%84%EC%A3%BC%EC%9D%B4%EC%94%A8

 

(고종) 의친왕 만오 이강, 의친왕비 연안김씨 -전주이씨-

의친왕 만오 이강 고종의 다섯째 아들로 1877년에 태어났다. 어머니 귀인 장씨는 의친왕을 낳고 명성황후의 박해를 피해 궁 밖에서 살다가, 1900년 숙원(淑媛) 칭호를 받고 1906년에야 겨우 귀인(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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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당 김씨(修仁堂 金氏) - 의친왕 부인 김흥인(金興仁) 여사

수인당 김씨(修仁堂 金氏, 1883년(1884년?)~?년)는 상민 출신 가문으로 동대문 밖 마을에서 탄생하였으며, 이름은 흥인(興仁)이다. 본적은 서울 종로구 원동 000번지이다. 김영욱(金永旭)의 누이자 의친왕의 부실로 황실의 외명부 품계를 받지 못하고 단지 수인당(修仁堂)이라는 당호을 받았다. 11세에 의화궁(義和宮)에 입궁하여 여관(女官)이 되고, 1909년에 출래(出來)를 하였다. 1919년 의친왕과 관훈동 196번지 사동궁에서 거주하였다. 의친왕이 상해 망명 사건 즉 대동단 사건 때 신문을 받았으며, 수인당 김씨는 이때 나이 36세였다. 자녀로는 3남을 두었는데 의친왕의 2남  흥영군 이우(興永君 李鍝, 1912년 - 1945년)로 아명은 성길, 종숙(從叔) 운현궁 사손(嗣孫) 종실 영선군 이준용에게 출계하여 운현궁의 종주가 되고, 5남  이주(李鑄, 1917년 - 1982년)로 아명은 수길, 이름은 해창, 제16대 인조의 3남 인평대군파 대궁 사손(嗣孫) 이인용(李寅鎔)에게 출계하여 대궁의 종주가 되고 구황실재산사무총국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6남 이곤(李錕, 1919년 - 1984년)은 아명은 명길로 사동궁의 사손(嗣孫)이다. 수인당 김씨는 의친왕을 모시면서 사동궁과 칠궁에서 거주하다가 별세하였다.

대한문화사적연구회장 이학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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