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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경기 여주시) 주경 김공석, 정부인 안악이씨 -선안동김씨-

by 보현당 2022.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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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공석(金公奭), 1477(성종3)-1553(명종8)

자(字)는 주경(周卿), 안렴사공(휘 사렴)의 후손. 1477년(성종3) 성의 3남(공량, 공석, 공망)중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1507년(중종2) 무과(武科)에 급제, 호조(戶曹)·공조(工曹)·형조 (刑曹)의 참의(參議)를 거쳐, 강릉부사(江陵府使)·포도대장(捕盜大將)·병마절도사(兵馬 節度使) 등을 역임하고 북병사·훈련원도정 등을 역임하고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이르렀다. 1534년(중종29) 공조참의를 지내고 1535년(중종30) 특진관 최세절(崔世節)특진관, 김공석, 원팽조(元彭祖)이 함께 진 설치와 봉수 설치를 위하여 다대포와 부산포 등지를 가서 보았다.

1537년(중종32) 찰리사 김공석을 상가(賞加)하면 바로 2품이 되므로 물품으로 숙마(熟馬) 1필을 상으로 받았다. 1539년(중종34) 압해관이 요동으로 떠날 때 의주목사 김공석(金公奭)는 일처리에 능숙한 사람이니 반드시 잘 처리할 것이라 하여 하처하였다.

1540년(중종35) (강릉)부사를 지내고 1542년(중종37) 함경도 관찰사 김섬과 함께 북도 병사(北道兵使)김공석(金公奭)이 육진(六鎭)을 순행하며 형편을 살폈다.1543년(중종38) 병조 판서 임권(任權), 형조 판서 신광한(申光漢), 포도 대장 김공석(金公奭) 등이 함께 의논하여 포도 절목(捕盜節目)을 마련한 단자(單子)에 도적의 발생 원인과 야간 순시를 아뢰었다. 김공석(金公奭)을 병조 참판에 제수하였다.

1545년(명종즉위년) 전라 병사 김공석(金公奭)의 서장을 정원에 내리면서, 중국에서 전수한 총통에 대해 세밀하게 전습할 것을 명했다

“이 서장을 보니 상당히 자세하다. 만약 왜인들이 중국인들과 교통하면서 총통 만드는 법을 전습하여 그 묘리(妙理)를 다 배우면 참으로 작은 일이 아니다. 오늘 중국 사람들에게서 전습하여 방포(放砲)한 후에 병조에 말해서 병사(兵使)와 수사(水使)로 하여금 세밀하게 갖추 알게 하여 힘써 전습하도록 하라.”

1552년(명종7) 김공석(金公奭)을 청홍도 수군 절도사(淸洪道水軍節度使)로 삼았다.

김공석 묘와 묘갈은 여주 백양동에 있는데 조카 김주가 찬하고, 송인이 서하였다. 金澍찬 叔父北道節度使公 [金公奭]神道碑銘이 寓庵遺集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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