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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최은희 -해주최씨-

by 보현당 2022.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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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배우 최은희는 1942년 연극 <청춘극장>을 통해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연극계에서 활약하던 고인은 1947년 <새로운 맹서>로 스크린에 데뷔한 뒤 <밤의 태양>, <마음의 고향> 등에 출연하면서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1950~60년대 트로이카로 부상했다. 1953년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를 통해 만난 신상옥 감독(2006년 타계)과 결혼한 뒤 <꿈>(1955), <젊은 그들>(1955),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로맨스 그레이>(1963) 등 약 13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또한 1967년 안양영화예술학교를 설립해 교장 겸 이사장을 맡았고, 극단 배우극장을 직접 운영하며 후배 연기자들을 양성하는 데 힘썼다.

1976년 신 감독과 이혼한 최은희는 1978년 1월 홍콩에 갔다가 북한 공작원에 납치됐으며, 신 감독도 그해 7월 납북되면서 두 사람은 1983년 북한에서 재회했다. 두 사람은 북한에서 신필름 영화촬영소 총장을 맡으며 <돌아오지 않는 밀사>, <탈출기>, <심청전>, <불가사리> 등 17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특히 고인은 북한에서 만든 영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인 최초의 해외영화제 수상 기록을 남겼다. 김정일의 신뢰를 얻은 고인과 신 감독은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 방문 중 미국 대사관에 진입해 망명에 성공했으며, 이후 10년이 넘는 망명 생활을 이어가다가 1999년 영구 귀국했다. 

귀국 후 고인은 2001년 극단 <신협>의 대표로 취임했고, 2002년에는 뮤지컬 <크레이즈 포 유>를 기획·제작했다. 또 2007년에는 자신의 영화 인생을 담은 자서전 <최은희의 고백>을 펴내기도 했다. 영화계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 대한민국영화대상 공로상, 2010년 대종상영화제 공로상, 2014년 대중문화예술상 보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최은희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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