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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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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대군)묘23

(태조) 익안대군 이방의[안양공] -전주이씨- 익안대군 안양공 이방의 이름 방의(芳毅). 시호 안양(安襄). 신의왕후(神懿王后) 한씨(韓氏) 소생. 1392년 태조가 즉위하자 익안군(益安君)에 봉해졌으며, 1398년(태조 7)의 제1차 왕자의 난과 1400년(정종 2)의 제2차 왕자의 난에 아우 방원(芳遠:太宗)을 보좌하여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과 좌명공신(佐命功臣) 2등에 각각 책록되고, 정1품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에 올랐다. 1398년 개국공신(開國功臣) 1등에 추록(追錄)되고 1400년(태종 즉위) 대군(大君)이 되었다. 정종의 묘정(廟庭)에 배향되고, 마한공(馬韓公)에 추봉되었다. 후배 부부인 이씨묘는 양주 이나 실전된듯 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익안대군 [益安大君] (두산백과) 2015. 12. 8.
(태종) 양녕대군 이제[강정공], 수성부부인 광산김씨 -전주이씨- 양녕대군 강정공 이제 1394(태조 3)∼1462(세조 8). 조선 전기의 왕자. 이름은 제(禔). 자는 후백(厚伯). 태종의 장남이고, 어머니는 여흥 민씨로 민제(閔霽)의 딸이며, 부인은 광주 김씨(光州金氏)로 김한로(金漢老)의 딸이다. 1404년(태종 4)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자유분방한 성품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왕세자로서 지녀야 할 예의 범절이라든가, 딱딱한 유교적인 교육이나 엄격한 궁중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남몰래 궁중을 벗어나서 사냥을 하는 등의 자유분방한 풍류 생활을 더 즐겼다. 이와 같은 품행은 부왕인 태종의 눈에도 걱정스럽게 비쳤으며, 엄격한 유학자들에게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태종은 몇 차례 그에게 군왕으로서 지녀야 할 덕행을 닦도록 타이르기도 하고, .. 2015. 12. 8.
(선조) 영창대군 이의 영창대군 이의 영창대군(永昌大君, 1606년~1614년)은 선조의 아들로, 인목왕후 소생으로, 이름은 의(㼁)이다. 선조의 영창대군은 유일한 적자이다. 선조는 이미 세자로 책봉한 광해군을 싫어하여 영의정(領議政) 유영경(柳永慶) 이하 몇몇 신하와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할 것을 몰래 의논하였다. 이 눈치를 안 이이첨(李爾瞻)·정인홍(鄭仁弘) 등은 세자를 바꿔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다가 선조의 비위를 거슬러 무근한 소리를 퍼뜨린다는 죄목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귀양길 떠나는 것을 차일피일하던 차에 갑자기 선조가 세상을 떠나자 광해군은 당일로 왕위에 올라 이들도 다시 불러 등용하였다. 1611년(광해군 3년)에 영창대군에 책봉되었다. 앞서 선조가 영창대군을 왕세자로 삼으려던 일 때문에 영창대군을 둘러싼 갈등이.. 2015. 6. 7.
(환조) 완풍대군 이원계 [양평공], 부부인 남평문씨, 부부인 경주김씨 완풍대군 양평공 이원계 휘는 원계(元桂)이며 시호는 양평(襄平)이다. 환조대왕의 1남으로, 어머니는 한산이씨이다. 태조고황제 잠저 시에는 공과 의안대군 등 3형제의 우애가 매우 두터웠다. 태조고황제와 함께 누차 홍건적과 왜구를 토벌, 혁혁한 공을 세웠다. 1359년(고려 공민왕 8)에 홍건적이 압록강을 건너와 노략질을 하자 이를 격파하여 2등공신이 되고 1361년 2차 침입 때 내부령(內府令)으로서 안우(安祐) 등과 함께 박주(博州)에서 홍건적을 크게 무찌르고 다음 해에는 수도인 개경을 수복하는 데 공을 세워 1363년에 또 2등공신에 책록되었다. 1375년(고려 우왕 1) 원제(元帝)가 고려 국왕으로 임명한 심왕(瀋王) 모자가 반역자 김의(金義)의 무리를 거느리고 이미 신주(信州)에 도착하였다는 보고에.. 2015. 1. 18.
(환조) 의안대군 이화 [양소공] 의안대군 양소공 이화 환조대왕과 정안옹주(定安翁主) 김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휘는 화(和)이고 호는 이요정(二樂亭), 시호는 양소(襄昭)이다. 대광보국 숭록대부(大匡輔國 崇綠大夫)이며 태조고황제의 동생이다. 고려 공민왕 때 대장군으로서 왜적과 홍건적을 물리쳐 큰 공을 세웠고 우왕 때는 조전원수(助戰元帥)로서 왜적을 소탕하였다. 1388년(우왕 14) 위화도 회군 때 조전원수로서 우군도통사인 태조고황제를 도와 활약하여 1393년(태조 2) 회군1등공신 녹권을 받았다. 1389년 개국에 저항하는 세력들을 제거하는 데 큰 공을 세워 개국공신이 되었다. 1392년(태조 1) 순충좌명(純忠佐命)개국1등공신 녹권을 받고 의안백(義安伯)으로 봉작되었다. 1395년(태조 4) 태조고황제를 모시고 조정에서 중추 역할.. 2015. 1. 18.
(임영대군 배위) 부부인 안동안씨 본관은 안동 임영대군의 배위 이시며, 영양군의 모친되신다. 2014. 10. 12.
(세종) 영응대군 이염 [경효공], 춘성부부인 해주정씨, 대방부부인 여산송씨, 연성부부인 연안김씨 경효공 영응대군 이염 영응대군(永膺大君) [1434(세종 16)∼1467(세조 13)] 휘는 염(琰), 시호는 경효(敬孝). 세종대왕의 제8남이며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이다. 1441년(세종 23) 영응대군에 봉해지고, 1443년에 역양대군(歷陽大君), 1447년에 영응대군으로 개봉(改封)되었다. 배위는 해주정씨 참판 충경(忠敬)의 딸과 여산송씨 판중추(判中樞) 복원(復元)의 딸이다. 부왕의 총애가 지극하였으며, 1450년 부왕인 세종대왕도 그의 저택인 동별궁(東別宮)에서 승하하였다. 1463년(세조 9) 의 가사를 한글로 번역하였고, 글씨와 그림에 능하고 음률(音律)에도 통달하였다. 2014. 10. 11.
(태종) 성령대군 이종 [소경공], 삼한국대부인 창령성씨 소경공 성령대군 이종 태종대왕의 4남이며 세종대왕의 동생으로 휘는 종(?), 시호는 소경(昭頃). 8세에 취학하고 1414년(태종 14)에 성녕대군으로 책봉되었으며 1417년(태종 17)에 대광보국 숭록대부 계급에 올랐다. 창녕성씨(1417∼ ?) 좌찬성 희정공(僖靖公) 억(抑)의 딸을 부인으로 맞고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의 첩지를 받았다.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이다. 대군은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활을 쏠 때 백발백중이므로 태종대왕 양위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1418년(태종 18)에 병환이 생겨 태종대왕이 친히 치병하고 어루만지며 쾌유하기를 빌었으나 불행하게도 그 해 2월 5일 14세의 어린 나이로 별세하였다. 태종대왕은 크게 슬퍼하며 2일간 수라를 물리치고 3일간 정사를 쉬었으며 30일 .. 2014. 10. 11.
(태종) 효령대군 이보 [정효공], 예성부부인 해주정씨 정효공 효령대군 이보 1396(태조 5)~ 1486(성종 17) 조선 제3대 왕 태종의 둘째 아들 이름은 보(補), 초명은 호(祜). 자는 선숙(善叔), 호는 연강(蓮江).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元敬王后閔氏)이다. 1407년(태종 7) 효령군(孝寧君)에 봉해졌으며, 1412년 효령대군으로 진봉되었다. 활쏘기에 능해 항상 태종을 따라 사냥터에 다녔으며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불교를 숭상하여 회암사(檜巖寺)의 중수와 흥천사탑전(興天寺塔殿)의 수리, 원각법회(圓覺法會) 개최 등 많은 불사를 주관했다. 또한 〈반야바라밀다심경 般若波羅蜜多心經〉·〈원각경〉 등도 언해·간행했다. 유신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불교의 보호와 진흥에 크게 기여했으며 문장에도 능했다. 성종대까지 왕실 어른으로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2014. 10. 11.
(임영대군 계배) 제안부부인 전주최씨 2014.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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