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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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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대군)묘23

(임영대군 초배) 대군부인 의령남씨 2014. 3. 1.
(세종) 임영대군 이구 [정간공] 임영대군 휘는 구(구), 자는 헌지(獻之), 시호는 정간(貞簡). 세종대왕의 제4남이며 모친은 소헌왕후 심씨이다. 대군은 성품이 조용하고 인자하며 부귀를 탐하지 않았다. 학문을 닦는 데 힘써 시 · 서 · 경 · 사와 병서를 공부하였다. 또한 사물제작의 정교한 솜씨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경탄을 받았다. 재능을 안 세종대왕은 화포제작의 감독을 명하였다. 대군이 제작한 화살은 종전에 2∼3백보 나가던 것이 천여 보 안팎까지 나갔다. 군사기기의 성능을 개량하기도 하여 대군은 `병기와 군사에 관한 지보(至寶)'라고 불렸다. 대군은 평생을 정의 · 성실 · 청렴 · 검약으로 일관하였으며, 부귀와 사치를 멀리 하였다. 세종대왕의 왕자들 중에 가장 청빈하게 생활하였다. 또한 의기는 활발하고 의론에 뛰어나 사람들을 항상.. 2014. 3. 1.
(태종) 양녕대군 이제 [강정공], 수성부부인 광산김씨 양녕대군 강정공 이제 태종의 맏아들. 이름은 제(褆), 자는 후백(厚伯). 어머니는 민제(閔霽)의 딸이며, 부인은 김한로(金漢老)의 딸이다. 1402년(태종 2) 원자(元子)로 봉해졌으며, 1404년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1409년 이후 태종이 정사를 보지 않을 때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정치에 참여했고, 명나라 사신 접대나 강무시솔행(講武時率行) 등 세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세자로 책봉된 직후부터 학문에 게으르고 무절제하다고 하여 태종에게 지적을 받았으며, 나이가 들면서 방종이 더욱 심해져, 태학(怠學)·정강(停講)이 계속되었다. 또한 매와 개 등 완물(玩物)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군소배들과 어울려 세자로서의 품위를 손상시켰다. 1417년에는 태종이 아무도 모르게 보관하라고 준 왕친록(王親錄)을 .. 2012.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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