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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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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당의 묘지기행783

(문신) 중부 정언원, 숙부인 풍산김씨 -나주정(丁)씨- 자는 중부 생부는 정호선이며, 양부는 정호서 있다. 세자시강원필선을 지내셨다. 풍산김씨는 예조판서 김수현의 따님이시다. 2022. 12. 7.
(문신, 경기 이천시) 이호 송정규, 숙부인 전주이씨, 숙부인 전주이씨 -여산송씨, 청백리- 1656(효종 7)∼1710(숙종 36).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원경(元卿), 호는 우수(迂叟). 참판 송일(宋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도승지 송시길(宋時吉)이고, 아버지는 송증(宋拯)이며, 어머니는 신득홍(申得洪)의 딸이다. 1683년(숙종 9) 증광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고, 1690년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에 올랐다. 당시 폐출된 인현왕후 민씨(仁顯王后閔氏) 처우문제에 대한 소를 올렸다. 이어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이 되고 1696년 경성판관으로 그 지역을 잘 다스려 품계가 오르고, 뒤에 승지가 되어 참찬관(參贊官)을 겸임하였다. 1701년에 인현왕후가 죽자 고부사(告訃使)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1708년 강원도관찰사로 있으면서 절수(折受: 국가로부터 자신의 몫으로 땅이.. 2022. 12. 7.
(덕천군파, 경기 용인시) 순안부령 이여귀, 신인 파평윤씨, 원주원씨, 진주하씨 -전주이씨- 장연령의 차자이시다. 부인 파평윤씨는 윤맹겸의 따님이시다. 원주원씨는 원준경의 따님이시다. 진주하씨는 군수 하윤의 따남이시다. 2022. 12. 4.
(관직, 경기 고양시) 풍창부원군 습지 홍난상, 계배 정경부인 능성구씨 -풍산홍씨- 본관은 풍산, 자 중서, 호는 습지 이다. 홍이상의 동생이다. 벼슬은 형조좌랑을 지내시고, 증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 풍창부원군이시다. 2022. 12. 4.
(문신, 충북 진천군) 언수 신경희, 정부인 전주이씨 -평산신씨- ?∼1615(광해군 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기묘명현 신상(申鏛)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별검(別檢) 신화국(申華國)이고, 아버지는 신급(申礏)이며, 도순변사(都巡邊使) 신립(申砬)의 조카이다. 1588년(선조 21) 음보(蔭補)로 임관되었다. 이듬해정여립(鄭汝立)의 옥사가 일어나자 그 일당인 선홍복(宣弘福)을 붙잡은 공로로 6품직에 발탁되어 1591년 제용감주부(濟用監主簿)가 되었다. 1593년 고산현감으로 도원수 권율(權慄)의 휘하에 종군하여 공을 세우고 같은 해 행주산성의 대첩보(大捷報)를 제일 먼저 왕에게 보고하였으며, 면천군수와 중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605년 재령군수로 재직 중 순변사 이일(李鎰)의 종사관(從事官) 윤섬(尹暹)을 사칭하며 도당을 모아 횡행하던 윤세침.. 2022. 11. 30.
(영조, 충북 음성군) 화길옹주, 능성위 구민화 -능성구씨- 1752년(영조 28)∼1772년(영조 48). 영조(英祖)의 서녀로 어머니는 숙의문씨(淑儀文氏)이다. 능성위(綾城尉) 구민화(具敏和)에게 하가하였다. 구민화는 호군 구현겸(具顯謙)의 아들이다. 1772년(영조 48) 12월 18일에 죽는다. 소생은 1남 2녀가 있으며 구명희(具命喜)와 2녀는 김이초(金履初)와 윤영명(尹永明)에게 시집갔다. 2022. 11. 30.
(종실, 경기 용인시,덕천군파) 장연령 이은동, 신부인 창녕조씨 -전주이씨- 덕천군의 장남인 신종군의 6남이시다. 장연령공은 영산령 순안령 부평감 자손을 두고 있다. 2022. 11. 27.
(숙종, 충남 예산시) 명빈 밀양박씨 명빈 박씨(榠嬪 朴氏, ? ~ 1703년)는 조선 숙종의 후궁이다. 원래 상궁(尙宮)이었다가 숙종의 승은을 입어 후궁이 되었다. 승은을 입은 지 10여 년이 지난 1698년(숙종 24년)에야 숙원(淑媛)에 책봉되었고, 이듬해인 1699년(숙종 25년)에는 단종의 복위를 기념하여 숙의(淑儀)에 진봉되었다. 이어 귀인에 올랐다가 1702년(숙종 28년) 에 정1품 빈의 자리에 올라 명빈(榠嬪)이 되었다. 2022. 11. 25.
(문신, 충남 아산시) 이면 -덕수이씨- 충무공이 극진히 사랑하던 셋째아들 이면은 어려서부터 인물(人物)이 출중(出衆)하고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란하였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아산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있을 때 왜적(倭敵)들이 마을에 쳐들어와 분탕질을 하자 나아가 왜적(倭敵)을 무찌르고 21세의 약관으로 장렬히 전사(戰死)하였다. 향토방위(鄕土防衛)의 귀감이 되는 이면公의 전사(戰死)에 조정(朝廷)에서는 병조참의(兵曹參議)를 증직(贈職)하였다. 2022. 11. 25.
(문신, 경기 여주시) 구암 한백겸, 정경부인 능성구씨, 정경부인 함창김씨 -청주한씨- 조선의 학자. 자는 명길(鳴吉), 호는 구암(久庵). 본관은 청주(淸州). 어려서 배움에 힘썼으며, 민순(閔純)에게 《소학》과 《근사록(近思錄)》을 배웠고 계속하여 의리(義理)에 관한 연구에 힘써 육경논맹(六經論孟)과 염락관민(廉洛關閩)에 이르기까지 정통하였다. 1586년(선조 19) 천거에 의하여 중부 참봉(中部參奉)이 되고 곧이어 경기전(慶基殿) 참봉을 역임하였다.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 모반 때 연좌되어 귀양갔다가 임진왜란 때에 석방되어, 적소에서 적군에게 아부하여 난을 선동한 자들을 참살한 공으로 내자직장(內資直長)이 되었다가 여러 내외직을 거친 다음 호조 참의(戶曹參議)가 되었다. 선조가 죽자 대신들은 백겸이 예(禮)에 밝다 하여 빈전(殯殿)의 상례(喪禮)를 맡겼다. [네이버 지.. 2022.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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