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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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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신7

(공신, 용인시 향토유적) 순양부원군 상경 안몽윤, 정경부인 한산이씨 -순흥안씨, 진무공신-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상경(商卿). 아버지는 직장(直長) 세복(世復)이다. 음보로 군직에 나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왜군을 토벌하고, 선조가 8도에 내린 명에 의하여 부적행위(附敵行爲)를 하며 구날(構捏 : 억측으로 일을 꾸밈)을 일삼던 왜역관 김덕회(金德澮)·김응관(金應灌)을 목베어 행재소에 보냈다. 전주 분조(分朝 : 비상 시에 정궁을 떠나 다른 장소에서 국정을 전담하던 임시조정)에서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1599년에 부장(部長)으로 창덕궁을 지켰으며 그 뒤 사헌부감찰을 거쳐 남포현감·옥구현감·안동판관 등의 외직을 지내면서 일을 잘 처리하여 함안군수에 승진하고, 1612년(광해군 4)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이듬해에 우림장(羽林將), 1618.. 2023. 10. 23.
(문신, 공신) 남양군 제옹 도열공 홍경주 -남양홍씨, 정국공신- 본관 남양(南陽). 자 제옹(濟翁). 시호 도열(度烈). 1501년(연산군 7) 문과에 급제, 1504년 지평이 되고, 1506년 사복시(司僕寺) 첨정(僉正)으로 중종반정(中宗反正)에 가담하여 정국(靖國)공신으로 남양군(南陽君)에 봉해지고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이어 도승지에 특진되었다. 이듬해에는 이과(李顆)의 옥사(獄事)를 잘 처결하여 다시 정난(定難)공신에 책록된 뒤 삭훈되었다. 이후 병조판서 ·좌찬성 ·호조판서 ·대사헌을 지내고 좌참찬(左參贊)이 되었다가 사림파(士林派) 출신 언관(言官)들의 탄핵으로 물러났다. 1519년(중종 14) 훈구파(勳舊派)의 일원으로 심정(沈貞) ·남곤(南袞) 등과 함께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일으켜 조광조(趙光祖) 등 사림파의 신진(新進) 세력을 실각시키고 그 후 좌찬성 .. 2023. 4. 27.
(관직) 순창부원군 장의공 김여물, 정경부인 함양박씨 -순천김씨- 본관은 순천. 자는 사수(士秀), 호는 피구자(披구子)·외암(畏菴). 찰방 훈(壎)의 아들이고, 영의정 유(瑬)의 아버지이다. 1577년(선조 10) 알성문과에 장원급제했다. 병조낭관을 지내고 충주도사(忠州都事)를 거쳐, 1591년 의주목사로 있을 때 서인 정철(鄭澈)의 당으로 몰려 파직되고 의금부에 투옥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순변사 신립(申砬)이 그의 무략과 재능을 알고 자기의 종사관으로 임명해줄 것을 왕에게 간청하여, 함께 충주 방어에 나섰다. 신립이 새재(鳥嶺) 방어의 어려움을 들어 충주로 나아가 배수의 진을 치려 하자, 이에 반대하고 새재를 점령하여 지키든지 높은 언덕을 이용하여 역습하자고 주장했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결국 충주의 달천(㺚川)을 등지고 배수진을 쳐 탄금대(彈琴臺.. 2023. 3. 26.
(문신, 공신) 안천군 안숙공 오미 권준, 영춘현부인 해주정씨 -안동권씨, 정난공신- 조선전기 호조판서, 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검교시중(檢校侍中) 권고(權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검교정승(檢校政丞) 권희(權僖)이고, 아버지는 찬성사 권근(權近)이며, 어머니는 우정언 이존오(李存吾)의 딸이다. 형은 우찬성 권제(權踶)이다. 1427년(세종 9) 공신의 아들로서 감찰에 기용되어 1430년(세종 12)에는 호조좌랑이 되었다. 이때 공법(貢法)의 제정에 있어 척박한 산전(山田)은 매년 경작할 수 없는데, 평야지대의 전답과 같이 논한다면 폐단이 크므로 수령에게 밭주인의 신고를 받아 직접 그 경작여부를 답사한 연후에 조세를 거두도록 건의하였다. 1434년(세종 16) 종부시판관으로 진구(賑救: 재해를 입은 백성들을 구제함)을 살피기 위하여 강원도와 함길도에 파견되었.. 2023. 2. 1.
(문신, 경기 남양주시) 여원군 입암 민제인, 정경부인 고성이씨 -여흥민씨, 초장지 회덕- 1493(성종 24)∼1549(명종 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희중(希仲), 호는 입암(立巖). 민충원(閔冲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사간 민수(閔粹)이고, 아버지는 전적(典籍) 민구손(閔龜孫)이며, 어머니는 김효진(金效震)의 딸이다. 1520년(중종 15)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호당(湖堂)에서 독서하다가 이듬해 승정원주서로 탁용되었다. 그러나 이때 「척간유생도기(擲奸儒生到記)」를 가필했다고 해서 탄핵을 받아 잠시 물러났다. 김안로(金安老)가 물러난 1525년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으로 다시 등용되어 사필(史筆)에 종사하였다. 1528년 사간원정언을 거쳐, 1531년 이조정랑에 올랐다. 이어서 성균관사성으로 승진했으며, 이때 문신 제술시(文臣製述試)에서 수석을 차지하.. 2022. 6. 22.
(공신) 청천부원군 류순정 [문정공], 정경부인 안동권씨 -진주류씨- 청천부원군 문정공 류순정 1459년(세조 5)∼1512년(중종 7).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지옹(智翁). 목사 유양(柳壤)의 아들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학업을 닦고 활을 잘 쏘아서 무인 중에서도 그와 비교할 자가 드물었다. 1487년(성종 18) 진사로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홍문관전적을 제수받았다. 그뒤 훈련원정으로서 전라도 지방에 침투한 왜적을 수색, 포획하는 데 힘썼고, 1491년 함경도평사로서 도원수 허종(許琮)의 막료가 된 뒤 평안도평사를 역임하였다. 연산군이 즉위하자 사헌부헌납으로서 임사홍(任士洪)의 잔악함을 논박하고, 평안도절도사 전림(田霖)의 권력남용을 추궁하는 한편, 야인문제에 대한 대책을 진언하기도 하였다. 그뒤 홍문관교리가 되었는데, 문신으로서.. 2016. 4. 12.
(공신) 아성부원군 이산해 [문충공], 정경부인 양주조씨 아성부원군 문충공 이산해 1539(중종 34)∼1609(광해군 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여수(汝受), 호는 아계(鵝溪)·종남수옹(終南睡翁). 장윤(長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치(穉)이고, 아버지는 내자시정(內資寺正) 지번(之蕃)이며, 어머니는 남수(南脩)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작은아버지인 지함(之菡)에게 학문을 배웠다. 1558년(명종 13) 진사가 되고, 1561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에 등용되고, 이듬 해 홍문관정자가 되어 명종의 명을 받아 경복궁대액(景福宮大額)을 썼다. 이어 부수찬이 되고 1564년 병조좌랑·수찬, 이듬 해 정언을 거쳐 이조좌랑이 되었다. 1567년(선조 즉위년) 원접사종사관(遠接使從事官)으로 명나라 조사(詔使)를 맞이한 뒤 이조정랑·의.. 2013.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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