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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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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정씨8

(문신) 중부 정언원, 숙부인 풍산김씨 -나주정(丁)씨- 자는 중부 생부는 정호선이며, 양부는 정호서 있다. 세자시강원필선을 지내셨다. 풍산김씨는 예조판서 김수현의 따님이시다. 2022. 12. 7.
(문신, 경기 안산시) 두호 정시윤, 숙부인 한산이씨 -나주정(丁)씨- 1646(인조 24)∼1713(숙종 39).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나. 자는 자우(子雨), 호는 두호(斗湖). 윤복(胤福)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관찰사 호선(好善)이고, 아버지는 교리 언벽(彦璧)이며, 어머니는 목취선(睦取善)의 딸이다.669년(현종 10)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된 뒤 음보(蔭補)로 현감을 지내고, 1690년(숙종 16)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그 해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올랐다. 그 뒤 정언(正言)·부수찬(副修撰)·헌납(獻納)·수찬(修撰) 등 삼사의 청직(淸職)만을 두루 거쳤다. 1694년 홍문관부교리로 있을 때 남인과 소론간의 당쟁이 격화, 남인일파가 몰락하고 소론이 정권을 장악한 갑술옥사가 발생하자 남인으로 지목되어 삭직되었다. 1698년 세자시강원필선으로 복직.. 2022. 8. 11.
(천주교 복자, 경기 광주시) 복자 정철상 가를로 -나주정(丁)씨- 본관은 나주이며, 세례명은 가롤로이다. 경기도 광주의 마재(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정약종(丁若鍾)과 한산 이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었고, 1839년에 순교한 유 체칠리아 성녀는 그의 계모이다. 정하상(丁夏祥) 성인과 정정혜(丁情惠) 성녀의 이복형이며, 포천 출신인 홍교만(洪敎萬) 복자(福者)의 사위이다. 어려서부터 부친에게 천주교 교리를 배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고, 교회의 가르침을 충실히 지켜 제사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에 집안 어른이 천주교를 금지하고 신부를 고하라며 송곳으로 찌르기도 했지만, 정철상은 결코 신부를 고발하지 않았다. 이처럼 유명한 가문의 후손이었지만, 아버지 정약종과 마찬가지로 세속적인 것에는 뜻을 두지 않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만 의미를 .. 2022. 8. 7.
(천주교성인, 경기 광주시) 성 가록 정하상 바오로 -나주정(丁)씨- 조선후기 기해박해 당시에 순교한 천주교인. 세례명 바오로. 본관은 나주(羅州). 경기도 양근 출생. 초대 명도회장(明道會長)인 약종(若鍾)의 둘째아들이며, 약용(若鏞)의 조카이다. 어려서 서울로 이사하여 살던 중 1801년(순조 1)에 아버지와 맏형 철상(哲祥)이 순교하자 어머니는 어린 남매인 하상과 정혜(情惠)를 데리고 시댁이 있는 마재(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로 낙향하였다. 20세 때 홀로 서울에 다시 올라와 조숙(베드로) · 권천례(데레사) 부부의 집에 기거하면서, 신유박해로 폐허가 된 조선교회의 재건과 성직자 영입운동을 추진하였다그러던 중 1816년 동지사(冬至使) 통역관의 하인이 되어 북경에 들어가 선교사를 조선에 파견해 줄 것을 청원하였다.그러나 북경교구의 사정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그 뒤.. 2022. 8. 5.
(문신, 경기 양평군) 고암 정윤희, 정부인 동래정씨 -나주정(丁)씨- 정윤희(丁胤禧) : 1531~1589 자는 경석(景錫), 호는 고암(顧庵)이다. 1556년 알성문과에 장원 급제 이조좌랑을 역임하고 사가독서하였고, 뒤에 문과중시에 다시 장원하고, 판결사를 거쳐 장단부사로 나갔다가 예조 호조의 참의를 지냈다. 특히 사륙문에 뛰어나 한때 홍문관과 예문 관의 모든 서류를 찬술하였다. 외후손 海州人 鄭銘燮 참배 2022. 7. 19.
(문신, 강원 원주시) 묵공옹 정언황, 정부인 황성조씨 -나주정(丁)씨-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중휘(仲徽) 또는 위수(渭叟), 호는 묵공옹(默拱翁). 정응두(丁應斗)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윤복(丁胤福)이고, 아버지는 사성(司成) 정호관(丁好寬)이다. 어머니는 선략장군(宣略將軍) 이광립(李光立)의 딸이다. 1615년(광해군 7)에 진사가 되고, 1628년(인조 6)에 별시문과 병과에 급제했으나, 아버지가 광해군 때 대관(臺官)으로서 영창대군의 출치(黜置)에 관여한 이유로 관로가 순조롭지 못하였다. 그러나 1634년에 신계현령을 비롯하여, 1642년 장령, 1646년 우부승지, 1647년 병조참지를 역임하고 서장관(書狀官)으로 심양(瀋陽)에 다녀왔다. 1648년에는 강빈옥사(姜嬪獄事)로 제주도에 유배된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세 아들을 구제하려고 상소했으나 묵살되자, 스스.. 2022. 7. 15.
(문신) 손암 정약전, 부인 풍산김씨 -나주정씨- 1758(영조 34)∼1816(순조 16).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천전(天全), 호는 손암(巽庵)·연경재(硏經齋)·매심(每心). 경기도 광주(지금의 남양주군 조안면 능내리) 출신. 항진(恒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지해(志諧)이고, 아버지는 진주목사 재원(載遠)이다. 어머니는 해남윤씨(海南尹氏)로 덕열(德烈)의 딸이다. 약용(若鏞)의 형이다. 어릴 때부터 매우 재주가 있고 총명했으며 성격이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아 거리낌이 없었다. 소년시절부터 서울에서 이윤하(李潤夏)·이승훈(李承薰)·김원성(金源星) 등과 깊이 사귀면서 이익(李瀷)의 학문에 접하여 심취하였다. 이어 권철신(權哲身)의 문하에 나아가 학문을 더 깊이있게 배웠다.1783년(정조 7)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자, .. 2017. 5. 11.
(문신, 실학자) 열수 정약용[문도공], 숙부인 풍산홍씨 문도공 열수 정약용 [다산] 정약용(1762∼1836). 실학자(實學者). 세례명 요한. 자는 미용(美鏞), 송보(頌輔), 귀농(歸農), 호는 다산(茶山), 삼미(三眉), 여유당(與猶堂), 사암(俟庵)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다산으로 널리 알려졌다. 정재원(丁載遠)의 사남(四男)이며, 이승훈(李承薰)의 처남이다. 양근(楊根)의 마재[馬峴]에서 출생. 성호 이익(星湖 李瀷)의 학풍을 이어받아 실학(實學)을 집대성하였다. 1789년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으나 공서파(攻西派)의 탄핵으로 해미(海美)에 유배되었다가 10일만에 풀려 나왔다. 이어서 경기도 암행어사, 동부승지(同副承旨), 병조참의(兵曹參議) 등을 역임하다가 천주교인으로 지목 받아 금정찰방(金井察訪)으로 보외(補外)되기도 하였다. 그 뒤 곡산부.. 2013.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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