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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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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4

(문종, 경기 고양시) 경혜공주敬惠公主, 영양부원군 헌민공 정종 -해주정씨- 경혜공주의 묘지명〔敬惠公主墓誌銘〕 - 삼탄집 제14권 : 삼탄 이승소(李承召, 1422~1484) 경혜공주는 문종 공순대왕(文宗恭順大王)의 따님이다. 어머니 권씨(權氏)는 바로 현덕왕후(顯德王后)이며 뒤에 폐위(廢位)되었다. 안동(安東)의 대성(大姓)인 고려 태사(太師) 권행(權幸)의 후손으로, 자헌대부(資憲大夫) 중추원사(中樞院使)를 지낸 권전(權專)이 태부(太傅) 문헌공(文憲公) 최충(崔冲)의 12대손인 부정(副正) 최용(崔鄘)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영락(永樂) 무술년(1418, 태종18)에 왕후를 낳았다. 선덕(宣德) 신해년(1431, 세종13)에 궁궐로 선발되어 들어가 문종(文宗)을 저궁(儲宮)에서 모시었으며, 을묘년(1435)에 공주를 낳았다. 공주는 경오년(1450)에 정종(鄭悰)에게 시집갔는.. 2022. 6. 16.
(06대) 사릉(思陵) - 정순왕후(定順王后) 여산송씨 [사적 제209호] 정순왕후(定順王后) [사릉(思陵)] - 사릉(思陵)은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능이며 단릉 형식이다. 처음에는 단종의 누이인 경혜공주가 출가한 해주 정씨 묘역이었던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사릉리에 민간 신분의 묘로 조성되었다. 그 후 중종 때 대군 부인의 예로 복위되고, 숙종 때(1698년) 왕후의 능으로 추봉되었기 때문에 다른 능에 비하여 단출하면서 간소하다. 능침의 규모는 매우 작고, 병풍석 난간석을 설치하지 않았으며, 문석인과 석마만이 자리 잡고 있다. 양석과 호석도 한 쌍 씩으로 간소화되어 있다. 사릉의 정자각은 맞배지붕으로 되었으며 배위가 짧기 때문에 전체 건물의 모습이 정(丁)자형 보다는 정사각형의 느낌을 준다. 정자각에 오르는 계단은 동계만이 남아 있다. 사릉은 문화재청이 관할하는 궁과 능에 필.. 2012. 11. 23.
(06대) 장릉(莊陵) - 단종(端宗) [사적 제196호] 단종(端宗)[장릉(莊陵)] - 문종(文宗)이 임종(臨終)에 앞서 단종(端宗)의 유충(幼沖)함을 염려하여 영의정 황보인(領議政 黃甫仁), 좌의정 김종서(左議政 金宗瑞) 등에 보좌(補佐)를 유언(遺言)으로 남겼으나 고명대신 등(顧命大臣 等)이 단종 원년(端宗 元年)(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란(癸酉靖亂)으로 피살(被殺)되고 문종(文宗)의 제(弟)이며 왕숙(王叔)인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영의정(領議政)이 되어 군국대사(軍國大事)를 좌지우지(左之右之)하였고 수양(首陽)은 동복제 안평대군(同腹弟 安平大君)이 고명대신(顧命大臣)과 불궤(不軌)를 꾀하였다 하여 강화도(江華島)로 추방(追放)하고 단종(端宗) 3년(1455년) 윤6월(閏6月) 11일 역시 동복제 금성대군(同腹弟 錦城大君)을 역모(逆謀)의 죄(罪).. 2012. 11. 22.
(관직) 영양부원군 정종 [영양위] 영양부원군 헌민공 정종 [영양위] 정종(鄭悰, ? ~ 1461년)은 참판 정충경(忠敬)의 아들이다. 1450년(세종 32년)에 문종의 딸 경혜공주(敬惠公主)와 혼인한 뒤 영양위(寧陽尉)에 봉하여졌다. 단종 초기에 형조판서가 되어 단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가, 1455년(단종 3년) 금성대군의 사건에 관련되어 유배되었다. 이 해 수양대군이 세조로 즉위하였고 정종은 문종의 유일한 사위라 하여 경기도 양근에 양이(量移)되었다. 1456년(세조 2년) 사육신 사건으로 죄가 가중되어 수원 통진을 거쳐 경기도 광주시에 안치되었다가 1461년에 승려 성탄 등과 반역을 도모했다 하여 사사되었다. 영조 때 신원되어 단종묘와 공주 동학사(東鶴寺) 숙모전(肅慕殿)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헌민(獻愍)이다.단종 초기에 형조판서.. 2012.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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