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반응형

문화류씨12

(고려무신) 철원부원군 무민공 최영, 삼한국대부인 문화류씨 -동주최씨- 최영(崔瑩, 1316년 ~ 1388년)은 고려 말기의 장군 겸 정치가이다. 본관은 동주(東州)이다. 아버지는 최원직(崔元直)이고, 어머니는 봉산 지씨(鳳山智氏)이다. 시호는 무민(武愍)이다. 우왕의 왕비인 영비 최씨는 그의 서녀였다. 군관으로 출사하여 우달치에 임명된 뒤 관직은 육도 도순찰사, 양광, 전라도 왜적 체복사 등을 거쳐 문하시중에 이르렀다. 1374년에는 제주도에서 일어난 목호(牧胡)의 난을 진압했고, 1376년(우왕 2)에는 왜구의 침략 때, 육군을 이끌고 논산군 연산의 개태사(開泰寺)로 올라오는 왜구를 홍산(鴻山)에서 크게 무찔러 철원 부원군(鐵原府院君)에 봉작되었으며, 여러 번 왜구와 홍건적을 격퇴하고 안사공신(安社功臣)에 책록되었다. 이인임 등을 멀리하였고 1388년 이인임, 염흥방을 .. 2023. 2. 12.
(관직, 충북 진천군) 인성부원군 문청공 송강 정철, 정경부인 문화류씨 -연일정씨, 충청북도 기념물 106호- 조선 중기 때의 문신 · 문인. 서울출생.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 돈녕부판관 유침(惟沈)의 아들이다. 어려서 인종의 귀인인 큰 누이와 계림군유(桂林君瑠)의 부인이 된 둘째누이로 인연하여 궁중에 출입, 같은 나이의 경원대군(慶源大君 : 명종)과 친숙해졌다. 10세 되던 해인 1545년(명종 즉위년)의 을사사화에 계림군이 관련되자 그 일족으로서 화를 입어 맏형은 장류(杖流) 도중에 죽고 아버지는 유배당하였는데, 그도 관북(關北) · 정평(定平) · 연일 등 유배지를 따라다녔다. 1551년에 아버지가 귀양살이에서 풀려나자 그 할아버지의 산소가 있는 전라도 담양 창평 당지산(唐旨山) 아래로 이주하게 되고, 이곳에서 과거에 급제할 때까지 10년간을 보내게 된다. 여기에서 임억.. 2022. 10. 5.
(문신, 충북 진천군) 송강 문청공 정철, 정경부인 문화류씨 -연일정씨, 충청북도 기념물 제106호- 본관 연일(延日). 자 계함(季涵), 호 송강(松江). 시호 문청(文淸). 기대승(奇大升)·김인후(金麟厚)·양응정(梁應鼎)의 문하생. 어려서 인종(仁宗)의 귀인(貴人)인 맏누이와 계림군(桂林君) 유(瑠)의 부인이 된 둘째 누이로 인하여 궁중에 출입하였는데 이 때 어린 경원대군(慶原大君:뒤에 明宗)과 친숙해졌다. 1545년(명종 즉위) 을사사화(乙巳士禍)에 계림군(桂林君)이 관련되자 아버지가 유배당할 때 배소(配所)에 따라다녔다. 1551년 특사되어 온 가족이 고향인 창평(昌平)으로 이주, 김윤제(金允悌)의 문하가 되어 성산(星山) 기슭의 송강(松江)가에서 10년 동안 수학할 때 기대승 등 당대의 석학들에게 배우고 이이(李珥)·성혼(成渾) 등과도 교유하였다. 1561년 진사시에, 다음 해 별시문과에 각각 .. 2022. 6. 26.
(광해군의 국구) 문양부원군 류자신, 봉원부부인 동래정씨 -문화류씨- 문양부원군 류자신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이자 외척이다. 본관은 문화이고 자는 지언(止彦)이다. 공조판서 유잠(柳潛)의 아들이며 광해군의 장인이다. 이담(李湛)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64년(명종 19) 사마시에 입격하여 진사가 되고 이후 태릉참봉, 돈령부직장, 내자시주부, 평강현감, 호조좌랑, 김포현령, 형조정랑, 김제군수, 장악원첨정 등을 지냈다. 1587년 셋째 딸을 왕자의 부인으로 들여보냈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옥사에 안악현감으로 나가 해서(海西)의 가담자와 연루자들을 색출, 잡아들였으며, 이후 광주목사 등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 때는 광해군을 수행하였다. 그 후 돈령부동지사를 거쳐 외직인 성천부사,개성부 유수, 한성부 판윤 등을 역임하고 오위도총부 도총관 등을 지냈으며, 160.. 2021. 7. 14.
(문신) 경언 류덕신, 정부인 당진한씨 -문화류씨- 경언 류덕신 1548년(명종 3)~1617년(광해군 9). 조선 중기 관리. 자는 경언(敬彦)이다. 본관은 문화이다. 부친은 공조판서(工曹判書) 유잠(柳潛)이다. 형은 문양부원군(文陽府院君) 유자신(柳自新)이다. 관직은 임천군수(林川郡守)‧온양군수(溫陽郡守)‧사복시첨정(司僕寺僉正)‧옥천군수(沃川郡守)‧중화부사(中和府使)‧돈령도정(敦寧都正)‧연안부사(延安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1599년(선조 32) 임천군수에 재직하면서 고을의 향교를 개축해줄 것을 충청감사(忠淸監司)에게 청하였다. 1605년(선조 38)에는 온양군수를 역임하였는데, 그에 대한 백성들의 비난과 원망이 많았으며, 이미 혼인한 딸을 출가시키지 않고 데리고 있다가 충청도안문어사(忠淸道按問御史) 성진선(成晉善)에 의해 이러한 사실이 조정에 보고되.. 2016. 7. 2.
(광해군 국구) 문양부원군 지언 류자신, 봉원부부인 동래정씨 -문화류씨- 문양부원군 지언 류잠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이자 외척이다. 본관은 문화이고 자는 지언(止彦)이다. 공조판서 유잠(柳潛)의 아들이며 광해군의 장인이다. 이담(李湛)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64년(명종 19) 사마시에 입격하여 진사가 되고 이후 태릉참봉, 돈령부직장, 내자시주부, 평강현감, 호조좌랑, 김포현령, 형조정랑, 김제군수, 장악원첨정 등을 지냈다. 1587년 셋째 딸을 왕자의 부인으로 들여보냈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옥사에 안악현감으로 나가 해서(海西)의 가담자와 연루자들을 색출, 잡아들였으며, 이후 광주목사 등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 때는 광해군을 수행하였다. 그 후 돈령부동지사를 거쳐 외직인 성천부사,개성부 유수, 한성부 판윤 등을 역임하고 오위도총부 도총관 등을 지냈으며, 1.. 2016. 7. 2.
(관직) 문녕부원군 류잠, 정경부인 하동정씨 -문화류씨- 문녕부원군 류잠 류잠(柳潛, 1509-1576) 본관은 문화 중종 35년(1540)에 문과에 급제하여 삼사(三師)의 관직을 거쳐 예조(禮曺)와 공조(工曺) 판서를 지낸 후 선조조(1576)에 아깝게도 명을 다하지 못하고 6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문녕부원군(文寧府院君)에 봉해졌다. 2016. 7. 2.
(문신) 동고 이희검, 정경부인 문화류씨 -전주이씨- 동고 이희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질(景質), 호는 동고(東皐) 또는 국재(菊齋). 비(裶)의 현손이며, 모양군(牟陽君)식(植)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선사정(仙槎正)승손(承孫)이고, 아버지는 하동령(河東令) 유(裕)이며, 어머니는 유곤원(柳坤元)의 딸이다. 수광(晬光)의 아버지이다. 1546년(명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학유·정랑·교리 등을 거쳐 승지·오위장을 지내고 사간에 이르렀다. 이때 왕실의 인척임을 기화로 횡포를 부리는 이량(李樑)을 탄핵하였다가 도리어 장단부사로 좌천되었으나 드디어 이량이 쫓겨나게 되자 다시 우승지에 제수되었다. 1572년(선조 5) 진하부사(進賀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병조참의·대사헌을 거쳐 호조·형조·병조의 판서를 지내고, 지경연사(知經筵事)를 지냈.. 2016. 5. 22.
(15) 광해군묘(光海君墓) - 광해군(光海君), 문성군부인(文城君夫人) 문화류씨 광해군(光海君, 1575년 6월 4일 (음력 4월 26일) ~ 1641년 8월 7일 (음력 7월 1일)[1])은 조선의 제15대 임금이다. 성은 이(李), 휘는 혼(琿),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선조와 공빈 김씨의 둘째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세자로 책봉되었고, 함경도와 전라도 등지에서 군수품과 의병을 직접 모집하고 군량미를 모으는 데에도 힘썼다. 임진왜란 동안 세자의 몸으로 부왕을 돕고 전쟁 승리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으나, 부왕의 인정과 칭찬은 커녕 견제와 냉대를 당해야만 했다. 임진왜란 이후 1608년 왕위에 올랐다. 임진왜란의 뒷수습과 민생 안정을 위해 남인 이원익을 영의정에 등용하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으며, 후금과의 전쟁 위기 상황에서 실리외교를 펼치기도 했다.. 2015. 11. 25.
(문신, 사육신) 낭간 류성원 [충경공] -문화류씨- 충경공 낭간 류성원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문화. 자는 태초(太初), 호는 낭간(瑯玕). 아버지는 사인(舍人) 사근(士根)이다. 1444년(세종 26) 식년문과에 급제했다. 1445년 집현전저작랑(集賢殿著作郞)으로 〈의방유취 醫方類聚〉의 편찬에 참여했으며 1447년 문과중시에 합격했다. 1451년(문종 1)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고, 다음해에는 〈고려사절요〉를 편찬할 때 최항(崔恒)·박팽년(朴彭年)·신숙주(申叔舟)·이극감(李克堪) 등과 함께 열전(列傳)을 담당하여 찬술했으며, 춘추관기주관으로 〈세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했다. 1453년(단종 1) 10월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영의정 황보인(皇甫仁), 좌의정 김종서(金宗瑞) 등을 살해하고 정권을 잡은 뒤 집현전에 정난녹훈(靖難錄勳)의 교서(.. 2015. 1. 17.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