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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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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고지전투3

(백마고지전투) 소령 김경진 김경진 소령은 1920년 9월 8일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1949년 5월 육군사관학교를 8기로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으며 국군 제9사단 소속으로 6.25전쟁 기간 1950년 11월 전북 대둔산과 경북 김천·상주지구 공비토벌작전, 12월 강원도 설악산·오대산지구 전투, 1952년 7월 김화지구 전투에 참가해 큰 전공을 세웠다. 1952년 10월 김경진 소령(당시)은 제29연대 2대대장으로서 백마고지 전투에 참가하게 된다. 당시 백마고지는 철원평야 서북단에 위치한 396m 독립고지로서 작전상 요지 중의 요지였다. 전쟁 중 고지의 주인이 무려 스물네 번이나 바뀌고 하루 평균 5만발에 가까운 포탄이 쏟아져 세계 전사에 유례없는 치열한 고지공방전으로 불릴만큼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던 것이다. 1950년 10월 .. 2017. 6. 6.
(백마고지전투) 중위 이성덕 이 소위는 1929년 1월 평안남도에서 태어나 평양 제1중학교를 졸업한 후 6·25전쟁 중이던 1951년 7월 육군보병학교에 입학했다. 또 1952년 1월 소위 임관과 동시에 제9보병사단 30연대 소대장으로 보직됐다. 이 소위가 소속된 제9보병사단은 중서부전선의 395고지(일명 백마고지) 일대를 방어하고 있었다. 백마고지는 6·25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철의 삼각지 서측에 위치한 고지다. 적에게 탈취당할 경우 미 제9군단 방어선은 물론 서울로 통하는 유엔군 보급로까지 위협받게 될 전략요충지였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고지 쟁탈을 위한 전투가 12회나 일어났다. 이 공방전에서 이 소위는 중공군 1개 중대의 공격을 막다가 적 포탄을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고인의 전공을 기려 1.. 2017. 6. 6.
(백마고지전투) 육군상병 오규봉 1952년 10월 철의 삼각지인 백마고지 전투시 중공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30연대 1중대의 공격이 중단되었다. 이때 1소대의 오규봉 상병은 적 자동화기 진지를 폭파하기 위하여 대공포 판을 등에 메고 적 자동화기 진지로 돌진하였으며 소대장 강승우 소위와 안영권 일병은 화력으로 엄호사격을 하였다. 이 순간 소대장 강승우 소위가 티엔티와 박격포탄으로 적 특화점 공격을 결심, 기관총 진지의 7m까지 포복으로 전진 폭발물을 투척하려는 순간, 우측 팔에 총상을 입고 떨어뜨린 것을 안영권 일병이 잽싸게 주워 투척하고 오규봉 상병도 수류탄을 투척하여 기관총 진지를 파괴하고 산화함으로서 중대가 공격을 재개하여 목표를 탈환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들의 용감한 군인정신은 25회에 걸쳐 뺏고 빼앗기는 격전을 치른 백마고지 전.. 2017.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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