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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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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10

(독립운동가, 교육자) 김명신 김명신(金明信)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교육자로 3.1 만세 운동 당시 해주군의 만세 시위에 참여했다가 투옥, 후에 석방되었다. 한국의 초기 여자 전도사 주룰루의 아들이다.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자의 한 사람이었던 박희도는 그의 사촌 누이에게 부군이 되었다. 한국의 초기 여자 전도사 주룰루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박희도의 처사촌이다. 어머니 주룰루가 가정폭력을 피해 가출할 때 따라 나왔다. 그러나 아버지와 형이 곧 사망하여 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1919년의 3.1 만세 운동 직전 경성에서 만세 시위 유인물과 태극기를 인쇄하여 해주군으로 비밀리에 이송하였다. 3월 1일 3.1 만세 운동이 발생하자 해주군 해주읍 내에서 만세 시위가 벌어지자 최성모, 박희도, 오현경 등과 함께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 2023. 10. 19.
(애국지사) 박승유 -대전국립현충원- 서울 종로(鍾路) 사람이다. 1944년 10월에 절강성(浙江省) 의오현(義烏縣)에 주둔 중인 일본군 횡정(橫井)부대에 배속되었다가 탈출하여 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하였다. 그는 무석(無錫), 무호(蕪湖), 남경(南京)지역에서 초모공작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음악에 소질이 있던 터라서 야전 방송대에 파견되어 같은 동포 사병들에 대한 반정(反正)권고와 염전(厭戰)가곡 등의 방송으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2023. 9. 11.
(순국선열) 의병장 이능권 -국립 대전 현충원- 대한제국기 강화도에서 활약한 대동창의진의 의병장. 별명은 능한(能漢). 경기도 강화 출신. 한국군대의 육군대장으로서 1905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중인 만국평화회의(萬國平和會議)에 참가하러 가는 이준(李儁) 일행을 호위하여 일본군 수비대의 감시망을 뚫고 국외로 회송하였다. 1907년 군대해산령으로 해산된 강화진위대(江華鎭衛隊)의 군인 300여 명을 규합, 편성한 의병부대의 의병장이 되어 강화도에서 일본군과 접전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08년 의병부대를 대동창의진(大同倡義陣)이라 칭하고 이호춘(李浩春)·유성준(兪成俊)·김추옥(金秋玉)·여만복(呂萬卜) 등과 더불어 강화군 길상면의 방의표(方宜杓)로부터 군자금 1,500냥을 조달하는 등 11개 곳에서 4만3800냥의 군자금을 조달하였다. 또한 강화도 .. 2023. 9. 9.
(독립운동가) 김애순 -대전현충원, 김규식 배위- 일제강점기 대한애국부인회 회장, 상해한인여자청년동맹 간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교육자. 황해도 장연 출신. 아버지는 김성섬(金聖蟾), 어머니는 안성은(安聖恩)이다. 송천학교를 마치고 상경, 정신여학교를 졸업한 뒤 부산 초량소학교 교사로 부임, 민족정신을 일깨우고자 학생들에게 우리 나라 역사와 지리를 몰래 가르쳤다. 이 일로 여러 번 단속을 당하고, 붙잡힐 기미가 보이자 1911년 만주 통화현(通化縣)으로 망명하였다. 그 뒤 남경에서 중화명덕여자학원(中華明德女子學院)을 다녔다. 1919년 1월에 김규식(金奎植)과 결혼하고 상해로 이주, 김규식·신석우(申錫雨)·선우혁(鮮于爀)·장덕수(張德秀)·여운형(呂運亨) 등과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을 조직하여 이사로 취임, 국내와 만주를 내왕하며 독립운동을 하였다. .. 2023. 9. 8.
(애국지사) 조인원 -한양조씨, 조병옥 부친- 조인원(趙仁元, 1864년 5월 2일 ~ 1931년 7월 25일)은 유관순 일가와 함께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사람이자, 조병옥의 아버지이다. 아명(兒名)은 조택원(趙宅元)이고, 충청도 천안(天安)에서 출생한 그는 1919년 4월 1일 홍일선(洪鎰善)·김교선(金敎善)·한동규(韓東奎)·이백하(李柏夏)·이순구(李旬求)·유관순(柳寬順) 등과, 갈전면(葛田面) 아우내(竝川) 장날을 이용하여 대한 독립 만세 시위 운동을 사전에 계획하였다. 그는 1919년 4월 1일 오후 1시경 아우내 장터로 모여든 3천여 명의 만세 시위 군중 앞에 나아가 태극기와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워놓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대한 독립 만세를 힘차게 선창함으로써 아우내 장터의 독립 만세 시위를 점화시켰으며, 3천여명의.. 2023. 3. 16.
(애국지사) 류관순 열사 분묘 합장 -이태원 공원묘지 분묘 합장지- 1902년 12월 16일 충청남도 천안 병천면에서 아버지 유중권(柳重權)과 어머니 이소제(李少悌)의 5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공주에서 전도하던 감리교 선교사 부인(미국이름 엘리스 샤프)의 권유로 1916년 이화학당 보통과에 입학하였으며, 보통과를 졸업한 1918년 이화학당 고등과에 입학하였다. 1919년3월 10일 모든 학교에 임시휴교령이 내려지자, 유관순은 같은 이화학당을 다니던 사촌 언니 유예도와 함께 고향인 천안으로 내갔다.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가 아우내에서 독립만세 운동을 지휘하였으며, 일본 헌병대는 유관순의 부모를 죽이고 유관순을 체포하여 검사국으로 이송하였다. 유관순은 공주 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이 선고되고, 다시 경성 복심법원에 항소하여 징역 3년형이 언도되었다. 1920년 9월 2.. 2023. 3. 5.
(문신, 애국지사) 명암 최익현, 정부인 청주한씨 -경주최씨, 항일운동가- 조선후기 장령, 돈녕부도정, 승정원동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항일운동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찬겸(贊謙), 호는 면암(勉菴). 경기도 포천 출신. 최대(崔岱)의 아들이다. 6세 때 입학해 9세 때 김기현(金琦鉉) 문하에서 유학의 기초를 공부하였다. 14세 때 경기도 양근(楊根) 벽계(蘗溪)에 은퇴한 성리학의 거두 이항로(李恒老)의 문하에서 『격몽요결(擊蒙要訣)』·『대학장구(大學章句)』·『논어집주(論語集註)』 등을 통해 성리학의 기본을 습득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항로의 ‘애군여부 우국여가(愛君如父 憂國如家)’의 정신, 즉 애국과 호국의 정신을 배웠다. 1855년(철종 6) 명경과에 급제해 승문원부정자로 관직생활을 시작했던 이후 순강원수봉관(順康園守奉官)·사헌부지평·사간원정언·신창현감(新昌縣監)·성.. 2023. 2. 24.
(애국지사) 의병 신관수 -평산신씨- 의병 신관수 경기도 김포(金浦) 사람이다. 1908년 4월 이후 정용대(鄭容大) 의병장 휘하에서 통진군(通津郡) 교하면(交河面)·풍덕면(豊德面), 강화(江華)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벌였다. 그 뒤 1909년 6월 강화도 고도(高島) 해안에서 선박을 습격하여 군량을 확보하는 등의 활동을 벌이다. 피체되었다. 같은 해 7월 15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소위 강도죄로 징역 7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7. 12. 22.
(애국지사) 최성모 -민족표대33인- 애국지사 민족대표 33인 최성모 1874년 ~ 1937년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이다. 1919년 2월, 당시 중앙기독교청년회(中央基督敎靑年會) 간사로 있던 박희도(朴熙道)로부터 독립운동에 관한 계획을 전해듣고 이에 적극 호응하기로 한다. 2월 26일 이승훈(李昇熏), 오화영(吳華英), 이필주(李弼柱), 함태영(咸台永), 안세환(安世桓), 이갑성(李甲成), 박희도 등 기독교측 대표들과 한강(漢江) 인도교위에서 만나 최남선이 기초한 독립선언서와 기타 문서에 서명 날인할 기독교측의 대표자를 뽑았다. 이튿날인 27일에는 그의 집에서 기독교측 대표들과 다시 만나 독립선언서와 기타 서류의 초안을 회람한 후, 이에 찬성하여 기독교측의 민족대표로서 서명 날인한다. 28일 밤에는 재동(齋洞) 손병희의 집에서 천도.. 2016. 5. 25.
(애국지사) 연당 이갑성 - 민족대표 33인 민족대표 이갑성 이갑성[李甲成, 1889.10.23~1981.3.25]한말의 독립운동가.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1933년 신간회 사건으로 상하이에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펼치다가 귀국하였으며, 광복 후 여러 정치적 활동을 하였다. 본관 전주(全州), 호 연당(硏堂)이다. 1889년 10월 23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1915년 세브란스의학전문을 졸업하고, 1919년 3·1운동 때는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학생시위운동 및 전단살포 등 중책을 맡아 수행하다가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4년 세브란스 의약의 지배인이 되고, 1926년부터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YMCA) 이사로도 활약하였으며, 1933년 신간회.. 2014.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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