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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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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조씨6

(문신) 죽천 문익공 박정양, 정경부인 양주조씨, 정경부인 인동장씨 -반남박씨- 개항기 총리대신서리, 궁내부대신서리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치중(致中), 호는 죽천(竹泉). 박제근(朴齊近)의 아들이다. 1866년(고종 3)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1879년 형조참판을 지냈고, 1881년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문물을 시찰하고 귀국해 이용사(理用司)당상경리사(堂上經理事)가 되었다. 1882년 성균관대사성 · 이조참판 · 좌승지 등을 거쳐 1883년 이후 한성부(漢城府)좌윤(左尹) · 기기국총판(機器局總辦) · 내무협판 · 협판군국사무(協辦軍國事務) · 사헌부대사헌 · 협판교섭통상사무(協辦交涉通商事務) · 도승지 등을 지냈다. 1887년 협판내무부사(協辦內務府事)를 거쳐 주미전권공사(駐美全權公使)에 임명되었으나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압력으로 출발을 연기하였다.. 2023. 5. 5.
(문신) 두곡 조계생 [정평공], 현풍군부인 윤씨, 정부인 신창표씨 -양주조씨- 정평공 두곡 조계생 미상∼1438년(세종 20).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경부(敬夫), 호는 두곡(杜谷). 1388년(우왕 14) 문과에 급제, 조선 태조 때 검열·수찬을 거쳐 삼사의 도사에 승진하였고, 이천현령(利川縣令)을 역임하였다. 그뒤 감찰·평택현령을 거쳐 계림판관(鷄林判官)이 되었다. 1404년(태종 4) 좌정언·우정언이 되고, 이어 지평·장령·사인·직제학을 거쳐 1412년 판군자감사(判軍資監事)가 되었다. 이어 수원부사를 역임하였고, 사간·참의를 거쳐 판원주사(判原州事)로 나갔다가, 1419년(세종 1) 인수부윤(仁壽府尹)에 임명되었다. 다시 외임(外任)으로 1420년 황해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다음해 동지총제(同知摠制)로 천추사(千秋使)에 임명되어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 2016. 6. 18.
(문신) 관찰사 조수량, 정부인 여주이씨 -양주조씨- 평안도관찰사 조수량 미상∼1453년(단종 1).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보승별장(保勝別將) 인필(仁弼)의 증손으로 서운관정(書雲觀正) 의(誼)의 손자이며, 좌참찬 계생(啓生)의 아들이다. 부인은 이적(李迹)의 딸이다. 1420년(세종 2) 부사로 식년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였고, 1429년 예조좌랑으로서 경차관(敬差官)이 되어 경상우도에 파견되었으며, 그뒤 장령·집의·강원도관찰사·형조참판·대사헌·충청도관찰사·병조참판·경창부윤(慶昌府尹) 등을 역임하였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 때에 평안도관찰사로 있었으나 수양대군(首陽大君)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2016. 6. 18.
(문신) 이우당 조태채 [충익공], 정경부인 청송심씨 이우당 충익공 조태채 1660(현종 1)∼1722(경종 2).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유량(幼亮), 호는 이우당(二憂堂). 존성(存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형조판서 계원(啓遠)이고, 아버지는 괴산군수 희석(禧錫)이다. 어머니는 백홍일(白弘一)의 딸이다. 태구(泰耉)의 종제이며, 태억(泰億)의 종형이다. 1686년(숙종 12) 별시문과에 종형 태구와 함께 병과로 급제하였다. 내직으로 승문원의 정자·저작·박사와 성균관의 전적·직강, 사헌부의 감찰·지평·대사헌, 사간원의 정언·헌납·대사간, 홍문관의 수찬·교리, 승정원의 동부승지, 장례원의 판결사, 한성부의 판윤, 그리고 육조의 판서, 좌참찬 겸 판의금부사 등을 거쳐, 1717년 좌의정에 이르고 판중추부사에 전직하였다. 외직으로는 옥.. 2013. 10. 15.
(공신) 아성부원군 이산해 [문충공], 정경부인 양주조씨 아성부원군 문충공 이산해 1539(중종 34)∼1609(광해군 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여수(汝受), 호는 아계(鵝溪)·종남수옹(終南睡翁). 장윤(長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치(穉)이고, 아버지는 내자시정(內資寺正) 지번(之蕃)이며, 어머니는 남수(南脩)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작은아버지인 지함(之菡)에게 학문을 배웠다. 1558년(명종 13) 진사가 되고, 1561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에 등용되고, 이듬 해 홍문관정자가 되어 명종의 명을 받아 경복궁대액(景福宮大額)을 썼다. 이어 부수찬이 되고 1564년 병조좌랑·수찬, 이듬 해 정언을 거쳐 이조좌랑이 되었다. 1567년(선조 즉위년) 원접사종사관(遠接使從事官)으로 명나라 조사(詔使)를 맞이한 뒤 이조정랑·의.. 2013. 10. 15.
(문신) 만회 조사석 [충헌공], 정경부인 안동권씨 1632(인조 10)∼1693(숙종 19).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공거(公擧), 호는 만회(晩悔) 또는 만휴(晩休)·향산(香山)·나계(蘿溪). 남(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존성(存性)이고, 아버지는 형조판서 계원(啓遠)이다. 어머니는 영의정 신흠(申欽)의 딸이다. 태구(泰耉)의 아버지이다. 1660년(현종 1) 진사가 되고, 1662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의 관직과 주서 등을 거쳤다. 1666년 사관(史官)인 검열이 되고, 이어 봉교·겸설서로 승진하였다. 사관으로 있을 때인 1667년 왕이 지난해에 정태화(鄭太和)·홍명하(洪命夏)·허적(許積)을 탄핵한 이숙(李䎘)·박증휘(朴增煇) 등 7명의 간관을 유배보내면서 사관들에게 이를 사초(史草)에 기록하지 말도록 명했으나,.. 2013.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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