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여흥민씨30 (문신, 경기 남양주) 여백 민여준, 증 정경부인 완산이씨 -여흥민씨- 본관은 여흥, 자는 영백 벼슬은 음직으로 창신교위를 지내셨다. 이몽학의 난때 토벌에 참여하여 백성이 반란군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여 향인을 지킨공으로 통선랑 호조정랑에 증직되었다. 후에 자헌대부 의정부좌참찬겸 지의금부사오위도총관에 증직되었다. 2022. 6. 20. (문신, 경기 남양주시) 백기 민흥수, 숙인 연안김씨 -여흥민씨- 본관은 여흥, 자는 백기 부친은 민진로, 모친은 함평이씨 이시다. 음직으로 돈녕판관을 지내셨다. 2022. 6. 20. (무신, 친일반민족행위자) 공집 민대식, 정부인 한산이씨, 숙부인 신창맹씨 -여흥민씨- 1882~1951 자는 공집, 본과는 여흥이다. 일제강점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 군인 유명민영휘의 소생 중 맏아들로 한성부 출신이다. 본래 대한제국 군인이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1903년 대한제국 육군 정위 전역 후 1920년 민영휘의 뒤를 이어 은행업에 뛰어든 뒤 조선 실업계의 거물로 활동했다. 민대식은 1931년에 호서은행을 합병하여 동일은행을 창설하고 은행장격인 두취가 되었다. 1935년에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 책자에 따르면 "재계의 동향을 살펴 실무를 통제하는 일은 그의 독무대"였으며 "재계에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그가 나서서 조정역을 맡아 힘쓰지 않은 일이 없다"고 하여 민대식의 영향력을 알 수 있다. 조선토지개량주식회사, 조선.. 2022. 4. 4. (문신) 공우 민천식, 숙부인 전주이씨 -여흥민씨- 자는 공우 통훈대부 홍릉참봉을 역임히사다. 부친은 민영휘 모친은 안유풍의 3삼으로 태어나셨다. 2022. 4. 2. (문신) 충익공 기재 박동량, 정경부인 여흥민씨 -반남박씨- 충익공 기재 박동량 1569(선조 2)∼1635(인조 1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자룡(子龍), 호는 기재(寄齋)·오창(梧窓)·봉주(鳳洲). 조년(兆年)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사간 소(紹)이고, 아버지는 대사헌 응복(應福)이며, 어머니는 선산 임씨(善山林氏)로 구령(九齡)의 딸이다. 1589년(선조 22) 진사시에 합격, 이듬 해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승문원부정자로 등용되어 검열, 호조·병조의 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병조좌랑으로 왕을 의주로 호종(扈從)하였다. 중국어에 능통해 의주에 주재하는 동안 왕이 중국의 관원이나 장수들을 만날 때는 반드시 곁에서 시중해 대중 외교(對中外交)에 이바지했으며, 왕의 신임도 두터웠다. 이듬 해 동부승지·좌승지를 .. 2021. 7. 14. (문신) 문목공 진일재 류숭조, 정경부인 여흥민씨 -전주류씨- 문목공 진일재 류숭조 1452(문종 2)∼1512(중종 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종효(宗孝), 호는 진일재(眞一齋). 영흥대도호부사(永興大都護府使) 유빈(柳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경손(柳敬孫)이다. 아버지는 서령 유지성(柳之盛)이며, 어머니는 권득(權得)의 딸이다. 1472년(성종 3) 사마시에 합격해 진사가 되었으며, 1489년(성종 20)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교서관정자에 발탁되고 사유록(師儒錄)에 들었다. 그 뒤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홍문관부교리(弘文館副校理)·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등을 지내면서 정부 관원들의 기강 확립과 국왕에 대한 간쟁에 힘썼다. 1504년(연산군 10) 국왕의 어지러운 정치를 직간하다가 미움을 사서 원주로 유배되었다. 그 뒤 중종반정.. 2020. 3. 27. (문신) 계정 민영환 [충정공], 정경부인 안동김씨, 정경부인 밀양박씨 본관 여흥. 자 문약(文若). 호 계정(桂庭). 겸호(謙鎬)의 아들. 명성황후의 조카. 백부(伯父) 여성부원군(驪城府院君) 태호(泰鎬)에게 입양하였다. 1877년(고종 14)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되고, 이듬해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그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그 뒤 정자(正字) ·수찬 등을 거쳐 1881년 동부승지(同副承旨), 1882년 성균관대사성으로 승진하였다. 그 해 생부 겸호가 임오군란으로 살해되자, 벼슬을 버리고 3년간 거상(居喪)하였다. 이조참의에 임명되었으며, 세 차례에 걸쳐 사직상소를 올렸지만 허락되지 않았다. 일단 관계(官界)로 돌아와, 약관의 나이로 도승지·홍문관부제학·이조참판·한성우윤(漢城右尹) 등을 지냈다. 1887년 상리국총판(商理局總辦)·친군전영사(親軍前營使)를 거쳐.. 2018. 7. 6. (문신) 중집 민광훈, 정경부인 연안이씨 -여흥민씨- 1595(선조 28)∼1659(효종 1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중집(仲集). 민사용(閔思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장흥고영 민여건(閔汝健)이고, 아버지는 부윤 민기(閔機)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1616년(광해군 8) 진사에 합격하고 인조 초 음보(蔭補)로 별검(別檢)이 되어 출사하였다.1628년(인조 6) 알성 문과에 장원한 뒤, 정언과 지평 등을 거쳐 1635년 홍문관에 등용되고, 1644년 교리, 이듬해 사간, 1649년(효종 즉위년) 통정(通政)으로 승진하여 사복시정(司僕寺正)과 안변부사를 거쳐 사간원정언이 되었다. 1652년 승지에 오르고, 이듬해 강원도관찰사가 되었으나 재변을 보고하지 않은 죄로 삭직되었다.1656년 다시 복직되어 병조와 공조의 참.. 2018. 5. 29. (문신) 석탄 이존오, 부인 여흥민씨 -경주이씨- 석탄 오존오 1360년(공민왕 9) 정몽주(鄭夢周), 문익점(文益漸) 등과 함께 문과에 급제한 이가 이존오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순경(順卿)이며 호는 석탄(石灘) 또는 고산(孤山)이다. 수원서기(水原書記)를 거쳐 사관에 발탁되었으며 1366년 우정언(右正言)이 되었다. 이때 신돈이 국권을 잡아 참람한 짓을 하여도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 25세의 청년 이존오가 격분하여 “요망한 물건이 나라를 그르치게 하니 제거하지 않을 수 없다 ”며 친척인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 정추(鄭樞)와 함께 상소를 올렸다. “신 등이 삼가 3월 18일 전내(殿內)에서 베푼 문수회에 참석하였는데 영도첨의(領都僉議) 신돈이 재신의 반열에 앉지 않고 감히 전하와 나란히 앉아 사이가 몇 자 떨어지지 아니하니 나라사람이 놀래.. 2017. 7. 22. (무신) 한릉군 이준의, 정경부인 여흥민씨 -광주이씨- 한릉군 이준의 부친은 중거 이강이시며, 모친은 의인 대구이씨 시다. 이준의공께서는 어모장군을 지내셨고 아드님께서 호종공신 3등로 책록되시어 증좌찬성 한릉군에 봉해지셨다. 2017. 7. 22. 이전 1 2 3 다음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