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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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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왕후6

(단종대왕 국구) 여량부원군 정민공 송현수, 여흥부부인 여흥민씨 -여산송씨, 정순왕후 - 조선전기 풍저창부사, 판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 아버지는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송복원(宋復元)이며, 단종의 장인이다. 1454년(단종 2) 풍저창부사(豊儲倉副使)로 있을 때 딸이 단종의 비로 책봉되자 여량군(礪良君)에 봉해졌고, 곧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를 제수받았으며 이어 판돈녕부사가 되었다. 이듬해 단종이 상왕으로 물러나고 세조가 즉위한 뒤 윤대(輪對: 관원들이 왕과 대좌하여 응대하기도 하고 또 정사의 잘잘못을 아뢰는 일) 때에 상왕의 보필을 당부받기도 하였다. 1456년(세조 2) 성삼문(成三問) 등 사육신의 단종복위사건이 일어나자 대간(臺諫)의 처벌요구가 있었지만 세조의 두둔으로 처벌을 면하였다. 이듬해 금성대군(錦城大君) 이유(李瑜)와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이 다시 .. 2022. 11. 22.
제501주기 사릉(단종대왕비 정순왕후 여산송씨)제향 -2022.07.17 11:00- 2022. 7. 18.
가릉 - 정순왕후(순경태후) 경주김씨 가릉 - 정순왕후(순경태후) 경주김씨 고려 24대 원종(元宗, 재위 1259∼1274)의 왕비 순경태후(順敬太后)의 능이다. 순경태후는 장익공(莊翼公) 김약선(金若先)의 딸로 본관은 경주이다. 1235년 원종이 태자로 책봉되자 태자비에 책봉되어 경목현비(敬穆賢妃)가 되었으며, 그 다음해에 충렬왕을 낳고 죽었다. 1244년에 정순왕후(靜順王后)에 추봉되고, 1274년 충렬왕이 즉위하자 순경태후로 추존되었다. 1305년 태후의 고향인 황려현(黃驪縣)을 여흥군(驪興郡)으로 승격하였으며, 1310년(충선왕 2) 원나라 무종(武宗)이 제서(制書)를 내려 고려왕비로 추존되었다. 2014. 11. 9.
(문신) 해흥군 정중휘, 정부인 동복오씨 해흥군 돈곡 정중휘 자는 신백(愼伯), 호는 돈곡(敦谷)이다. 세자시강원 필선을 지낸 해원군 식(植)의 맏아들. 1657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정자에 발탁되고 예문관 검열을 거쳐 성균관 전적으로 승진하였다. 1662년 사헌부 지평, 1665년 강원도 도사, 1672년 세자시강원 필선을 역임하고 1675년 경상도 관찰사로 나갔다가 들어와 좌승지, 도승지로 승진하고 예조참의에 임명되었으나 경상도 관찰사로 있을 당시의 일에 관련되어 양주로 귀양 갔다. 1678년 사면되어 장례원 판결사, 병조참의를 역임하고 1680년 해흥군의 군호를 받았다. 그러나 경신대출척으로 벼슬길도 막혀 집안에 머물다가 몇 년 뒤에 광주목사로 부임하였다. 1689년 기사환국이 일어나 남인의 서인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행해지자 이.. 2014. 6. 7.
(06대) 사릉(思陵) - 정순왕후(定順王后) 여산송씨 [사적 제209호] 정순왕후(定順王后) [사릉(思陵)] - 사릉(思陵)은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능이며 단릉 형식이다. 처음에는 단종의 누이인 경혜공주가 출가한 해주 정씨 묘역이었던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사릉리에 민간 신분의 묘로 조성되었다. 그 후 중종 때 대군 부인의 예로 복위되고, 숙종 때(1698년) 왕후의 능으로 추봉되었기 때문에 다른 능에 비하여 단출하면서 간소하다. 능침의 규모는 매우 작고, 병풍석 난간석을 설치하지 않았으며, 문석인과 석마만이 자리 잡고 있다. 양석과 호석도 한 쌍 씩으로 간소화되어 있다. 사릉의 정자각은 맞배지붕으로 되었으며 배위가 짧기 때문에 전체 건물의 모습이 정(丁)자형 보다는 정사각형의 느낌을 준다. 정자각에 오르는 계단은 동계만이 남아 있다. 사릉은 문화재청이 관할하는 궁과 능에 필.. 2012. 11. 23.
(06대) 장릉(莊陵) - 단종(端宗) [사적 제196호] 단종(端宗)[장릉(莊陵)] - 문종(文宗)이 임종(臨終)에 앞서 단종(端宗)의 유충(幼沖)함을 염려하여 영의정 황보인(領議政 黃甫仁), 좌의정 김종서(左議政 金宗瑞) 등에 보좌(補佐)를 유언(遺言)으로 남겼으나 고명대신 등(顧命大臣 等)이 단종 원년(端宗 元年)(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란(癸酉靖亂)으로 피살(被殺)되고 문종(文宗)의 제(弟)이며 왕숙(王叔)인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영의정(領議政)이 되어 군국대사(軍國大事)를 좌지우지(左之右之)하였고 수양(首陽)은 동복제 안평대군(同腹弟 安平大君)이 고명대신(顧命大臣)과 불궤(不軌)를 꾀하였다 하여 강화도(江華島)로 추방(追放)하고 단종(端宗) 3년(1455년) 윤6월(閏6月) 11일 역시 동복제 금성대군(同腹弟 錦城大君)을 역모(逆謀)의 죄(罪).. 2012.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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