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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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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윤씨27

(문신) 용서 윤원거, 정부인 안동권씨, 정부인, 정부인 광산김씨, 정부인 연일정씨 용서 윤원거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백호(伯奮), 호는 용서(龍西)이다. 아버지는 시강원필선(侍講院弼善)을 역임한 윤전(尹烇)이며, 어머니는 해평윤씨(海平尹氏)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윤효지(尹曉之)의 딸이다. 윤원거는 1635년(인조 13)에는 성균관 재생으로 들어갔으며, 이때 이이(李珥)·성혼(成渾)의 문묘종사운동에 참여하여 그 반대자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주전론을 제기하였으나 이때 적에 의해 강화도에서 아버지 윤전이 죽자 아버지의 유골을 수습한 후 모든 관직을 버리고 이산(尼山)[현 충청남도 논산시의 옛 지명]에 은거하며 윤순거(尹舜擧), 윤문거(尹文擧), 윤선거(尹宣擧) .. 2013. 10. 15.
(문신) 명재 윤증 , 부인 안동권씨 명재 징사 윤증 1629(인조 7)∼1714(숙종 40).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峰). 성혼(成渾)의 외증손이고, 아버지는 선거(宣擧)이며, 어머니는 공주 이씨(公州李氏)로 장백(長白)의 딸이다.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리될 때 소론의 영수로 추대되어 송시열(宋時烈)과 대립하였다. 1642년(인조 20) 아버지 선거와 유계(兪棨)가 금산(錦山)에 우거하면서 도의(道義)를 강론할 때 함께 공부하며 성리학에 전심하기로 마음먹었다. 1647년 권시(權諰)의 딸과 혼인하고,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이후 김집(金集)의 문하에서 주자(朱子)에 관해 배웠고, 1657년(효종 8) 김집의 권유로 당시 회천(懷川)에 살고 있던 송시열(宋時烈)에게서 『.. 2013. 10. 15.
(문신) 인재 윤원필, 정부인 경주정씨 인재 윤원필 윤원필[尹元弼, 연산군 2년(1496)~명종 2년(1547)], 자는 인재(隣哉), 본관은 파평, 파산부원군 정평공 윤지임의 셋째아들이고,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의 오빠이며, 소윤 윤원형의 형이다. 배위는 정부인 경주정씨이다. 상원원정을 역임하였고, 명종 19년(1564) 위사원종공신에 녹훈되어 대호군 겸 내승을 제수받았고, 후에 가선대부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 2013. 8. 17.
(문신) 명숙 윤원량, 숙부인 순천장씨 명숙 윤원량 자(字)는, 명숙 부친은 파산부원군 윤지임 전성부대부인 전의이씨의 둘째 아들 이시다. 위로 형 윤원개, 아래로는 동생 윤원필, 윤원로, 윤원형, 문정왕후가 있었다. 돈녕부도정을 지내셨다. 인종의 후궁 숙빈윤씨의 부친이시기도 하다. 2013. 6. 8.
(문신) 순거 윤원개, 영인여주이씨 순거 윤원개 자(字)는 순거 부친은 파산부원군 윤지임이며, 모친은 전성부부인 전의이씨 이시다. 윤지임의 장남이며 장례원사를 지내셨다. 문정왕후의 큰오빠 이시다. 2013. 6. 8.
(관직) [廢]서원부원군 윤원형 언평 윤원형 ?∼1565(명종 20).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언평(彦平). 판돈령부사 지임(之任)의 아들이며,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文定王后)의 동생이다. 1528년(중종 23) 생원시에 합격하고, 1533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1537년 권신인 김안로(金安老)에 의하여 파직, 유배되었다가 이해 김안로가 사사되자 풀려나왔다. 그뒤 수찬·교리·지평·응교등을 역임하였다. 세자(世子: 뒤에 인종)를 폐위하고 문정왕후의 소생인 경원대군(慶原大君) 환(峘)을 세자에 책봉하려는 모의를 진행함으로써 세자의 외숙인 윤임(尹任)과 알력이 생겨, 1543년에는 윤임일파를 대윤(大尹), 윤원형을 중심으로 한 일파를 소윤(小尹)이라 하여 외척간의 세력다툼이 시작되었다. 이해.. 2012. 9. 5.
(무신) 원릉군 평중 원균, 정경부인 파평윤씨 원릉군 평중 원균 1540년(중종 35)∼1597년(선조 30). 조선 중기의 무신. 자는 평중(平仲). 본관은 원주(原州). 고려 태조 때의 통합삼한공신(統合三韓功臣) 병부령 원극유(元克猷)의 후손이다. 부는 원준량(元俊良)이다. 1567년(선조 즉위년) 정묘 식년시(式年試) 무과 을과 2위에 급제, 선전관을 거쳐 조산만호(造山萬戶)로 있을 때 변방의 오랑캐를 무찌르는 데 공이 컸으므로, 부령부사로 특진되었다가 다시 종성으로 옮겨 병사 이일(李鎰)을 따라 시전부락(時錢部落)을 격파하는 데도 공을 세웠으며, 1592년(선조 25)에는 경상우수사가 되었다. 그해 4월 13일에 발발한 임진왜란은 양국간의 전쟁준비 격차로 말미암아 개전초부터 일방적인 패주의 연속이었으며, 거진(巨鎭)의 명관들은 다투어 도주하고.. 2012.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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