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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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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윤씨27

(문신) 완흥군 이섭, 정부인 안동김씨, 정부인 파평윤씨 -전주이씨- 완흥군(完興君)섭(涉)이며, 초배는 안동김씨 이고, 후배는 파평윤씨로 군자감정 협(悏)의 딸이다. 이후원의 증손이시다. 2016. 9. 4.
(공신) 진산부원군 문경공 자정 강맹경, 영천군부인 파평윤씨 -진주강씨- 진산부원군 문경공 자정 강맹경 본관은 진주. 자는 자장(子章). 세조의 즉위에 공을 세웠다.시호는 문경(文景)이다. 아버지는 지창녕현사(知昌寧縣事)를 지낸 우덕(友德)이다. 1429년(세종 11) 문과에 급제하여 사인·지승문원사·집의를 지냈다. 1451년(문종 즉위) 우부승지, 이듬해 도승지가 되었다. 1453년(단종 즉위) 계유정난 때 이조참판으로 수양대군을 도왔고, 1455년 세조가 단종에게서 왕위를 물려받는데 공을 세워 좌익공신(佐翼功臣) 2등에 책정되고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에 봉해졌다. 1457년(세조 3) 등극사(登極使)로 명(明)에 다녀왔다. 1458년 좌의정을 거쳐 이듬해 영의정이 되었다. 2016. 8. 5.
(공신) 파성부원군 효성공 경지 윤인경, 정경부인 우봉김씨, 정경부인 전주이씨 -파평윤씨- 파성부원군 효성공 경지 윤인경 1476(성종 7)∼1548(명종 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경지(鏡之). 순(惇)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계흥(繼興)이고, 아버지는 부사정 구(昫)이며, 어머니는 유종(柳琮)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영민했으며, 특히 문장에 능하였다. 1504년(연산군 10) 생원·진사 두 시험에 합격하고, 1506년 별시 문과에 정과로 급제해 성균관학록에 선발되었고,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그 뒤 봉교에 이어 다시 성균관전적에 올랐으며, 예조좌랑·병조좌랑·사간원정언을 거쳐 1511년(중종 6) 장악원첨정에 이르렀다. 외직으로 나가 태안군수로 근무하는 동안, 아버지의 상을 당해 사직하고 양주의 여막에서 죽을 먹으며 3년 간 시묘하니, 효행이 널리 알려져 명망이 더욱 .. 2016. 7. 10.
(성종) 정숙옹주, 영평위 윤섭 -파평윤씨- 정숙옹주, 영평위 윤섭 1492년(성종 23)∼미상. 성종(成宗)의 서녀로 어머니는 숙의홍씨(淑儀洪氏)이다. 파평윤씨 영평위(鈴平尉) 윤섭(尹燮)에게 하가하였다. 그러나 자식은 낳지 못하였다. 윤섭은 윤승류의 아들이다. 2016. 7. 7.
(문신) 분사 이성구 [정숙공], 정경부인 파평윤씨, 정경부인 안동권씨 -전주이씨- 정숙공 분사 이성구 자는 자이(子異), 호는 분사(分沙) 또는 동사(東沙), 시호는 정숙(貞肅). 수광의 장남이다. 1603년(선조 36) 진사에 오르고, 1608년(선조 41)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한원에 들어가 관직생활을 시작하였다. 광해군 초기에 전적 감찰에 이어 예조·병조·형조의 좌랑·부교리·헌납·병조정랑·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1613년(광해군 5) 헌납으로 있을 때 아버지는 대사헌을, 동생 민구는 홍문관 부제학을 지냄으로써 3부자가 삼사의 언관직에 같이 봉직하여 세인들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지평으로 있을 때 영창대군의 옥사가 일어나자, 시론(時論)에 반대하였으며, 영의정 이항복(李恒福)이 정협(鄭浹)을 천거하여 종성판관으로 삼자 이를 문제삼는 간당(奸黨)들을 저지하다가 파직되었다... 2016. 5. 22.
(문신,공신) 익성군 졸옹 홍서익[문정공], 정경부인 파평윤씨 -남양홍씨- 익성군 문정공 홍서익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시가(時可), 호는 졸옹(拙翁)이다. 1536년(중종 30) 관찰사를 지낸 홍춘경(洪春卿)의 아들로 태어났다. 서경덕, 이황의 문인이었으며 1561년(명종 16) 진사가 되었다. 1564년(명종 19)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이후 관직에 나가 정자, 교리 등을 지냈으며 1567년(선조 원년)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이후 대사간을 거쳐 1575년(선조 8) 호조참판을 지내던 중 사은사가 되어 명나라에 가서 종계변무(宗系辨誣: 조선 건국 초기부터 선조 때까지 200여 년간 중국 명나라에 태조 이성계에 관한 잘못된 기록을 고쳐 달라고 주청하던 일)에 힘썼다. 그 후 부제학, 예조판서, 대사헌을 역임하였고, 1590년(선조 23) 종계변무에 힘쓴 공으로 .. 2016. 1. 26.
(11) 태릉(泰陵) - 계비 문정왕후(文定王后) 파평윤씨 태릉(泰陵) 계비 문정왕후(文定王后) 파평윤씨 - 문정왕후는 1501년(연산군 7) 10월 22일 파산부원군 윤지임의 딸로 태어났다. 중종의 첫 번째 계비 장경왕후가 1515년(중종 10) 인종을 낳은 뒤 산후병으로 7일 만에 승하하자, 2년 뒤인 17세 때 왕비로 책봉되었다. 당시 인종이 세자로 책봉된 가운데, 문정왕후가 경원대군(훗날 명종)을 낳자, 기존의 세자를 폐하고 경원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려는 소윤(小尹)과 기존의 세자를 지키려는 대윤(大尹) 간의 권력싸움이 조정을 어지럽게 하였다. 이 가운데 1544년(중종 39) 11월 15일 중종이 승하하고 인종이 즉위하여 대윤이 득세하는 걸로 당쟁이 일단락되는 듯 싶었으나, 인종이 재위 8개월만에 승하하자 정권은 경원대군의 어머니인 문정왕후에게로 넘어왔다.. 2015. 7. 31.
(11) 희릉(禧陵) - 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 파평윤씨 희릉(禧陵) 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 파평윤씨 장경왕후는 1491년(성종 22) 7월 6일 영돈령부사 윤여필의 딸로 태어났다. 1506년(중종 1) 궁중에 들어와 처음에는 숙의에 봉해졌으며, 중종비 단경왕후 신씨가 폐출되자 1507년(중종 2) 왕비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1515년(중종 10) 원자를 낳고 산후병으로 7일 만에 경복궁 동궁 별전에서 25세의 나이로 승하하셨다. 희릉은 처음에는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릉(獻陵)의 서쪽 언덕에 조성하였다, 그런데 중종의 부마가 된 김안로가 세자인 인종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자기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옥사를 일으켰다. 그 중 하나가 희릉 천릉사건이다. 이는 김안로가 희릉 밑에 큰 돌이 깔려 있어 불길하다 주장하여 1537년(중종 32) 현재의 고양시 서삼릉으로 옮.. 2015. 7. 31.
(09) 선릉(宣陵) - 계비 정현왕후(貞顯王后) 파평윤씨 선릉(宣陵) 계비 정현왕후(貞顯王后) 파평윤씨 정현왕후 윤씨는 우의정 영원부원군 윤호의 딸로 1462년(세조 8) 6월 26일 태어났다. 1473년(성종 4) 6월 궁중에 뽑혀 들어와 숙의에 봉해지고, 1479년(성종 10) 연산군의 생모인 왕비 윤씨가 폐위되자 이듬해 11월 8일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녀의 아버지 윤호는 당시 정계에 떠오르는 소장파 샛별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외척 한명회를 견제할 수 있는 인물로 여겨졌고, 이러한 정치적인 이유로 여러 후궁 중 왕비에 책봉되었다는 평가가 있다. 폐비 윤씨의 비극적인 최후를 바라본 정현왕후는 성종에게 매우 관대하였으며, 이에 성종은 “투기하지 않는 사람이 드문데, 다행히 어진 왕비를 얻어 마음이 평안하다.”고 칭찬하였다. 정현왕후는 훗날 중종이 되는 .. 2015. 5. 31.
(07대) 광릉(光陵) - 정희왕후(貞熹王后) 파평윤씨 광릉(光陵) - 정희왕후(貞熹王后) 파평윤씨 정희왕후 윤씨(貞熹王后 尹氏, 1418년 12월 8일 (음력 11월 11일) ~ 1483년 5월 6일 (음력 3월 30일))는 조선 세조의 왕비이다. 시호는 자성흠인경덕선열명순원숙휘신혜의신헌정희왕후(慈聖欽仁景德宣烈明順元淑徽愼惠懿神憲貞熹王后)이다. 충청남도 출신으로 파평부원군 정정공 윤번(坡平府院君 貞靖公 尹璠)의 딸로,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조선 최초로 대왕대비의 칭호를 받았고, 또한 조선 최초로 수렴청정을 한 왕후이기도 하다. 또한 증손자인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는 그의 오빠 윤사분의 증손녀로 종증손녀였으며, 문정왕후와 인종의 후궁 숙빈 윤씨는 남동생 윤사흔의 후손들이었다. - 정희왕후는 판중추원사 윤번의 딸로 1418년(태종 18) 충청도 홍주에서 태어났.. 2014.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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