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부원군 대민공 완역재 강석덕
진주인 조선(朝鮮) 초기(初期)의 문신(文臣)으로 본관은 진주(晉州), 자(字)는 자명(子明), 호(號)는 완역재(玩易齋)이다. 회백(淮伯)의 아들이며, 세종(世宗)의 국구(國舅)로 영의정(領議政)을 지낸 심온(沈溫)의 사위이니 세종(世宗)과는 동서(同棲)간이 된다. 이 가문(家門)은 이러한 혼인(婚姻) 관계 등으로 조선(朝鮮) 초기의 대표적인 명문가(名文家)가 되었다. 즉 형(兄) 우덕(友德)의 아들 맹경(孟卿)은 영의정(領議政)에 올랐고, 아들인 희안(希顔)·희맹(希孟)은 모두 문과(文科)에 올라 이름을 떨쳤으며, 손자(孫子)인 구손(龜孫)은 우의정(右議政)에 올랐다. 태종(太宗) 초에 음사(蔭仕)로 계성전직이 되었으며, 세종(世宗) 초에 지양근군사로 발탁(拔擢)되어 선정(善政)을 베풀었고, 인수부소윤에 승진(陞進)되었다. 1441년(세종 23)에 우부승지가 된 후 마침 나라에서 『오례의(五禮儀)』를 편찬(編纂)중이라 지예조사로 임명(任命)되었고, 곧 좌승지(左承旨)가 되었다. 1444년에는 호조(戶曹)·형조(刑曹) 참판(參判)을 지냈다. 세종비 소헌왕후의 국상(國喪)에는 산릉도감제조가 되었고 왕명(王命)으로 그 석지(石誌)를 지어 올렸다. 이어 개성부(開城府)유수, 지돈녕부사 등을 역임(歷任)하다가 1455년(세조 1)에는 원종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학문(學問)에 힘쓰고 효우(孝友)가 독실(篤實)하여 명망(名望)이 높았다. 문장(文章)이 담박하였고, 전서(篆書)와 예서(隸書)에 정통하였다. 문집(文集)으로 『완역재집(玩易齋集)』이 남아 있다. 시호(諡號)는 대민(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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