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원군 소간공 이서
덕원군의 휘는 서(曙), 자는 정수(晶첤)이며 호는 종덕암(宗德菴), 시호는 소간(昭簡)이다. 근빈 선산박씨에게서 태어났다. 세조대왕의 왕자이며 10세에 덕원군에 책봉되었다. 덕원군은 1455년(단종 3) 7세 때 어머니 근빈 박씨를 여의고 부왕의 총애를 받으며 자랐다. 1462년(세조 8) 14살에 이미 혼인하여 사제(私第) 60여 칸을 하사받아 이 때부터 궁궐밖 건천동(乾川洞)에서 생활하였다. 효심이 지극하여 부왕을 정성껏 모셨으며 임금이 거둥시에는 항시 배행(陪行)하였다. 하루는 부왕이 온양온천에 행행할 때 종덕(宗德)에 잠시 머무르니 군이 부왕앞에 나가 이 곳 땅을 내려주실 것을 아뢰어 허락하니, 원래 이 곳은 나라에서 지표(地標)를 묻은 곳이라 이 곳 수구(水口)에 긴뚝을 쌓고 안산(청룡산)에 원당(願堂)을 짓고 석탑을 세웠으며 큰길을 진위(振威)로 옮기니 이 곳이 현재 덕원군의 묘가 있는 사패지이다. 1468년(세조 14) 덕원군이 20세 때에 부왕이 승하였다. 예종대왕 때에는 왕실과 국정을 돌보고 문충공 신숙주와 좌우협력하여 정난 익대공신(翊戴功臣)의 훈을 받았고 성종대왕 때에는 종부시 도제조의 직을 맡아 종실의 규찰업무를 담당하고 선왕 제향소의 일을 맡아 보았다. 덕원군은 1471년(성종 2) 행호(幸浩)선사가 전북 고창 선운산에 선운사(禪雲寺)를 중건할 것을 말씀드리니 찬성하며 직접 발원문을 써주었다. 행호선사가 이 발원문과 선왕의 혼기(魂記)를 어실(御室)에 모시고 수륙대회(水陸大會)를 열고 중건에 착수하여 13년 후인 1483년(성종 14) 어실과 장육전(丈六殿) · 관음전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7개 전당을 구비한 우람한 사찰을 창건하였다. 후에 정유재란 때 어실만 남고 소실되었다. 덕원군은 또한 세종대왕이 성리(性理)에 심취한 유지를 받들어 성현의 학문을 전수하고 <역(易)><예(禮)>를 밝히니 일대의 유종(儒宗)이라 칭송을 받았다. 배위는 임천군부인 경주김씨로 좌찬성 종직(從直)의 딸과 봉산군부인 함안윤씨로 함안군 말손(末孫)의 딸이며, 또한 안성군부인 청주양씨로 증 좌찬성 일원(逸源)의 딸과 창녕군부인 창녕성씨로 수찬 노풍(魯風)의 딸이다. 덕원군은 1498년(연산군 4) 7월 22일 건천동(乾川洞) 자택에서 별세하니 향년 50세였다. 묘소는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당현리에 있었다.
당시에 왕자가 죽으면 왕자의 예우로 나라에서 예장을 내렸는데 덕원군은 생존시에 말한 유언에 따라 예장을 받지 않았으니 다른 왕자의 묘소보다 초라하였다. 근세에 후손들의 주선으로 묘역을 정화하고 비석과 석물을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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