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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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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및 호국영령묘67

(애국지사) 백용성 - 민족대표 33인 민족대표 33인 백용성 백용성 [白龍城, 1863.5.8~1940.2.20] 한말의 독립운동가·승려.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 불교계를 대표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다는 이유로 옥고를 치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본관 수원(水原). 법명(法名) 진종(辰鍾). 속명 상규(相奎). 용성은 법호(法號). 전라북도 장수군(長水郡) 번암면(蟠岩面)에서 출생하였다. 16세 때 해인사(海印寺)에 들어가 수도생활을 한 후 전국의 명찰(名刹)을 돌면서 심신 연마에 힘썼다. 3·1운동 때는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불교계를 대표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불교종단의 정화를 위하여 힘쓰고 대처승의 법통계승(法統繼承)을 인정하는 일본의.. 2014. 6. 22.
(애국지사) 이필주 - 민족대표 33인 애국지사 이필주 이필주 [李弼柱, 1869.12.9~1942] 한말의 독립운동가,목사. 기독교청년회(YMCA) 상동 공옥 소학교 교사로 신생활운동을 전개하였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었다. 목회활동과 야학 개설 등 육영사업에도 힘썼다. 신사참배 거부 등 일제에 항거하였다. 1869년 12월 9일 경기도 고양(高陽)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한문을 배우고, 20세 때 구(舊)한 국군에 들어가 8년간 장교로 근무하였다. 1907년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상동(尙洞)교회 목사 전덕기(全德基)를 중심으로 하는 상동청년회에 가입, 그리스도교도가 되었다. 이어 기독교청년회(YMCA)에 들어가 상동 공옥(攻玉)소학교의 체육교사로 근무하면서 미신타파, 계급차별의 배격, 자립정신의 고취.. 2014. 6. 20.
(애국지사) 춘헌 이명룡 - 민족대표 33인 애국지사 춘헌 이명룡 이명룡 [李明龍, 1872.8.2~1956.11.12] 한말의 독립운동가로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체포되어 2년간 옥고를 치렀다. 1945년 조선민주당을 조직하여 고문에 추대되었다. 본관 전주(全州). 호 춘헌(春軒). 1872년 8월 2일 평안북도 철산(鐵山)에서 출생하였다. 한학을 배우고 1892년 그리스도교에 입교, 신앙생활과 육영사업에 힘썼다. 1902년 정주군(定州郡) 상업회의소 소장이 되어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한인토지수매를 적극 반대하였다. 1911년 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다녀온 후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3년 동안 복역하였다. 1916년 덕흥(德興)교회 장로가 되어 농장을 경영하며 교회를 설립하고, 국산품애용운동을 벌였다.. 2014. 6. 20.
(애국지사) 연당 이갑성 - 민족대표 33인 민족대표 이갑성 이갑성[李甲成, 1889.10.23~1981.3.25]한말의 독립운동가.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1933년 신간회 사건으로 상하이에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펼치다가 귀국하였으며, 광복 후 여러 정치적 활동을 하였다. 본관 전주(全州), 호 연당(硏堂)이다. 1889년 10월 23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1915년 세브란스의학전문을 졸업하고, 1919년 3·1운동 때는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학생시위운동 및 전단살포 등 중책을 맡아 수행하다가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4년 세브란스 의약의 지배인이 되고, 1926년부터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YMCA) 이사로도 활약하였으며, 1933년 신간회.. 2014. 6. 20.
(독립운동가) 현포 이병홍 독립운동가 현포 이병홍 이병홍 ( 李炳洪, 1891.~1955.10.17 )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사람이다. 1919년 3월 3일에 있은 고종황제의 국장일을 계기로 하여 거족적인 민족운동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났고, 진주 또한 3월 18일부터 5월까지 대소 20여 회에 가까운 시위에 3만 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하였다. 진양군 내에서 발생한 주요한 만세 시위 운동은 정촌면과 미천면을 들 수 있다. 단성면 배양리에 거주하던 이병홍은 평소 가까이 지내던 정촌면 관봉리 강재순(姜在淳)에게 서울의 3.1운동을 목격하고 숨겨가지고 온 독립선언서를 넘겨주고 동지 이종언(李種彦)과 수백장의 선언서를 찍어내어 인근 동지들에게 비밀리에 전달하여 다 같이 봉기할 것을 촉구하는 등 조국 광복에 힘썼다. 상해임시정부 요인으.. 2012. 11. 2.
(독립운동가) 준영 오재영(吳在英) 독립운동가 준영 오재영 오재영(吳在英, 1897∼1948), 독립운동가, 1920년 의열단원인 박재혁 선생의 부산경찰서 폭탄투척 거사를 지원하였고, 최근 안중근(安重根)의사가 이토 히로부미 저격 거사 직전 훈춘시 진탕촌 인근 취안허(圈河)촌에 머물면서 이 마을을 개척한 유지이며 숭신학교를 세워 독립운동을 한 오재영의 집에서 한달간 머물며 권총을 지원받았다는 증언이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 오재영 선생 묘가 없고 오준영 선생 묘가 있어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지나가시던 어르신께서 오재영선생 호가 준영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2012. 10. 24.
(독립운동가) 춘파 서동일(徐東日), 부인 최옥경 독립운동가 춘파 서동일 - 2009년 가을 망우리 공원묘지를 방문했다. 그것도 혼자 독립운동가 서동일 선생 묘를 참배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관리사무소로 보이는 곳에 들어가 독립운동가 서동일 선생 묘를 찾는데 위치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더니 묘비가 부인묘비라서 번호로 찾아야 한다고 하면서 자세하게 알려준다. 그냥 부인 이름 알려줘도 되는데. 오는 길에 오재영 선생, 이중섭 선생 묘소도 참배하면서 내려왔다. 공원묘지에서 일반 묘를 찾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필자의 증조모, 조부모 묘소가 공원묘지에 있는터라 찾는건 일도 아니다. 서동일 선생께서도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2011년 망우리에 갔을 때는 어떤 젊은 학생이(필자보다 어려 보임 그래서 물어봤더니 대학이라고 함) 서동일 선생 묘역을 찾는.. 2012.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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