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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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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친(왕실)묘38

(세조-창원군) 덕진군 이활, 평산군부인 평산신씨, 청원군부인 청주한씨 -전주이씨- 덕진군 이활 덕진군(德津君) [德津君(중종 16)] 휘는 활(?), 자는 원지(源之). 창원군의 계자(繼子) 생부는 덕원군이다. 덕진군은 연산군이 폭정과 음학을 일삼자 여러 차례 간했으나 듣지 않자 1506년(중종 1) 종실 중 운수군(雲水君) 효성(孝誠)과 상의하여 반정을 일으켜 성공, 정국공신(靖國功臣) 2등에 책록되어 종1품 가선대부가 되었다. 덕진군은 기상이 웅대하고 의지가 굳었으며 효심과 우애가 깊고 학문을 좋아하여 세칭 문장이라 일컬어졌다. 1521년(중종 16) 6월 9일 종기를 앓다가 향년 53세로 별세하였다. 배위 평산군부인 평산신씨는 억년(億年)의 딸로 1녀를 두어 성율(成慄)에게 출가시켰고, 배위 청원군부인 청주한씨는 충례(忠禮)의 딸로 3남 2녀를 두었다. 장남은 대원정(大原正)에 .. 2016. 8. 21.
(해원군) 화창군 이연, 군부인 광산노씨 -전주이씨- 화창군은 인성군의 제3자 해원군의 아들이니 선조의 증손이 된다. 인조 18년(1640)에 출생하여 47세의 일기를 마쳤다. 군부인은 광산인 사헌부감찰 노경명의 따님이시다. 2016. 4. 24.
(인평대군 4남, 용성대군) 복평군 이연 [효익공], 완산군부인 전주최씨 효익공 복평군 이연 휘는 연(?), 시호는 효익(孝翼). 대군의 4남이며 1872년(고종 9)에 특명으로 인조대왕의 4남 용성대군(龍城大君)의 계자로 출계했다. 1680년(숙종 6)에 경신대출척 때 별세했으며, 배위는 좌랑 완산최씨 영세(永世)의 딸이며, 묘는 합폄이다. 2014. 10. 12.
(인평대군 3자) 복선군 이염, 군부인 임천조씨 복선군 이염 휘는 염(쨲), 대군의 3남으로 사은사로 청나라에 내왕하였으며, 1680년(숙종 6)에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복창(福昌) · 복선(福善) · 복평(福平) 등 삼복(三福)으로 불리는 삼형제가 희생되었다. 횡피죄명으로 복주되었다. 묘소는 광주군 언부면 비정리이었고 1864년(고종 1) 7월에 복관작되었다. 고종태황제의 특명으로 완릉군이 입후되었으며 배위는 군수 임천조씨 시형(時馨)의 딸이다. 2014. 10. 12.
(인평대군 2자) 복창군 이정, 군부인 창원황씨 복창군 이정 휘는 정(楨), 대군의 2남으로 진하(進賀) 겸 사은정사(謝恩正使)로 청나라에 파견 되었으나 1680년(숙종 6) 남인 일파가 정치적으로 대거 실각하자 서인이 득세를 하게 되므로 1674년(현종 15)에 예론(禮論)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잡은 남인들은 숙종으로부터 그다지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던 차 당시의 영의정 허적(許積)의 유악남용사건(油渥濫用事件)으로 왕은 더욱 남인들을 꺼려하게 되었다. 이 때 서인 중 김석주 · 김익훈 등이 허적의 서자인 허견(許堅)이 종실인 복창 · 복선 · 복평군 3형제와 같이 역모(逆謀)한다고 고발하여 옥사(獄事)가 일어났다. 이로 인하여 복창군의 3형제와 허견 · 허적 · 윤휴도 죽음을 당하고 나머지 일파도 옥사(獄死) · 사사(賜死) 파직, 유배되었다. 이로써.. 2014. 10. 12.
(인평대군 장자) 복녕군 이욱 [효헌공], 양천군부인 양천허씨 효헌공 복녕군 이욱 복녕군(福寧君, 1639년 ~ 1670년 음력 10월 15일)은 조선 시대의 왕족이다. 인조와 인렬왕후 한씨의 3남인 인평대군의 장남이다. 또 고종은 복녕군의 직계 후손으로, 복녕군의 7세손이 된다. 효종이 즉위한 후인 1651년(효종 2년) 음력 6월 20일 정식으로 복녕군(福寧君)에 봉작되었다. 이후 1655년(효종 4년) 음력 4월 22일에 종실들에게 시행한 시험에서 합격을 하여 특별히 가자되고, 1662년(현종 3년) 음력 2월 14일에는 소덕대부(昭德大夫)가 가자되었다. 복녕군은 1670년(현종 11년) 음력 10월 15일 32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다. 복녕군은 고종 즉위 후인 1864년(고종 원년) 음력 7월 9일 효헌(孝獻)의 시호를 받았다. 2014. 10. 12.
(완원대군) 개령군 개령군 이지 李枝(1349~1427)는 조선시대 전기의 文臣으로 度祖의 손자이며, 태조 이성계의 從弟이다. 1388년(우왕 14)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할 때 中郞將이 되었고, 1392년 조선 개국과 함께 原從功臣이 되어 上護軍에 오른 뒤, 이·호·예조의 전서를 거쳐 順寧君에 봉하여졌고, 左廂軍士를 겸하였다. 1398년(태조 7) 제1차 왕자의 난에 연루되어 귀향을 갔었으나 1400년 이방원이 즉위하면서 유배에서 풀려나 開寧君에 봉해졌다. 1414년(태종 14)에 領恭安敦寧府事에서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을 거쳐 영돈녕부사가 되었다. 2014. 2. 28.
(종친) 흥인군 이최응 [문충공] 흥인군 효헌공 산향 이최응 이최응(李最應, 1815년~1882년)은 조선 시대의 왕족으로 흥선대원군의 형이다. 자는 양백(良伯), 호는 산향(山響), 군호는 흥인군(興寅君)이다. 남연군과 군부인 여흥민씨의 셋재 아들이자 흥선대원군의 바로 윗 형이었다. 시호는 효헌(孝憲)이었다. 흥녕군과 흥완군의 동생이자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친형이었으나, 그는 바로 아랫 동생 이하응에게 무시당했고 그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뒤에 명성황후는 그가 흥선대원군과 사이가 좋지 않은 점을 이용하여 그를 끌어들인다. 헌종 때 동지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고종 즉위 후 1866년에는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도감 당상이 되었다. 그뒤 판의금부사, 호위대장, 좌의정, 판종정경, 영의정 등을 거쳤으며, 1881년 통리기무아문의 총리대신에.. 2012.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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