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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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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묘44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김봉남] 앙드레 김(André Kim) 앙드레 김(André Kim, 1935년 8월 24일 ~ 2010년 8월 12일)은 대한민국의 패션 디자이너이다. 본명은 김봉남(金鳳男)이다. 종교는 불교이다.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구파발리 (현재의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 태생으로 신도초등학교와 한영고등학교를 졸업, 1962년에 디자이너로 데뷔하였다. 같은 해 소공동에 ‘살롱 앙드레(앙드레 김 의상실)’를 열어 한국 최초의 남성 패션디자이너가 된다. 남성 디자이너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 속에서도 개성있는 디자인과 노력으로 의상 디자인계를 개척한 그는 1966년 파리에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패션쇼를 열었다. 앙드레김은 1960년대 영화 배우 엄앵란 등의 옷을 만들며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1980년에 미스유니버스 대회의 주디.. 2017. 9. 9.
(소설가) 학촌 이범선 -전주이씨- "오발탄" 학촌 이범선 1920∼1981. 소설가. 호는 학촌(鶴村). 평안남도 신안주(新安州) 출신. 1938년 진남포공립상공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에서 은행원으로 근무하다가 일제 말기에 평안북도 풍천(風泉) 탄광에 징용되었다. 광복 후 월남해서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6·25 때는 거제고등학교에서 3년간 교편을 잡았다. 이 때 『현대문학』에 단편 「암표(暗票)」(1955)와 「일요일」(1955)로 김동리(金東里)의 추천을 받고 문단에 등단하였다. 그 뒤 휘문고등학교·숙명여자고등학교·대광고등학교 등에서 교편생활을 하면서 작품을 발표하였다. 1968년 한국외국어대학 전임강사로 부임하여, 1977년부터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 동안 한국문인협회 이사, 소설가협회 부대표위원에 선임되었고, 한국문인협회 부.. 2016. 10. 15.
(아동문학가) 최순애 -오빠생각- "오빠생각" 최순애 최순애 아동문학가 경기도 수원 출생(1914~1998) 최순애. 1925년 11월, 12살 소녀 최순애는 〈오빠 생각〉으로 방정환이 내던 잡지 《어린이》의 동시란에 입선자가 된다. 그 다음 해 4월, 16세 소년 이원수 역시 〈고향의 봄〉으로 이 코너의 주인공이 된다. 이리하여 수원의 최순애 소녀와 마산의 이원수 소년은 서로를 발견하고 급기야 1936년 6월 부부가 된다. https://youtu.be/p71UIABpPHM 1.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오빠 말타고 서울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2.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2016. 10. 14.
(아동문학가) 동원 이원수 -월성이씨, 고향의 봄 작사- 1911년 11월 17일 경상남도 양산(梁山)에서 출생하였다. 창원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서당에서 한문을 익혔다. 1922년 마산으로 이주하여 마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초등학교)를 다녔다. 6학년 때인 1926년 《어린이》지에 동요 《고향의 봄》이 당선되었다. 자신의 고향과 유년시절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며 1935년 작곡가 홍난파(洪蘭坡)에 의해 노래로 만들어졌다. 마산공립보통학교 재학중 일본인들의 만행을 비난하는 글을 교내신문에 기고 하였다. 1927년 당시 중학교 과정인 마산공립상업학교(마산상고를 거쳐 현, 용마고등학교)에 진학하였고《기쁨사》의 동인이 되면서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벌여 장편동화와 아동소설의 장르를 개척했고 아동문학 이론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마산공립상업학교 졸업후 함안금융조합에.. 2016. 10. 14.
(국문학자) 무애 양주동 무애 양주동 1903.6.24 ~ 1977 호 무애(无涯). 경기도 개성(開城) 출생. 1928년 일본 와세다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였으며, 그 이전 1923년 시지(詩誌) 《금성(金星)》을 발간하였다. 1928년 평양 숭실전문(崇實專門) 교수에 취임하고, 1929년 《문예공론(文藝公論)》을 발간, 1940년 경신중학(儆新中學) 교사로 취임했다. 1945년 동국대학교 교수가 되고, 1954년 대한민국학술원 종신회원에 선임되었다. 1958년 연세대학교 교수에 취임하여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고, 1962년 다시 동국대학교 교수가 되어 동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대한민국학술원상을 수상하고 정부로부터 문화훈장·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수여되었으며, 신라 향가(鄕歌) 등 한국 고가(古歌)를 연구하여 초기 국어학계에 큰 .. 2016. 10. 14.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이상림 빈민열사 이상림 약력 1938년 12월 20일 충남당진 출생 2007년 11월 용산 4지구 세입자 철거민 비상대책위원회 건설. 2008년 3월 용산 4지구 상공철거민 대책 위원회 건설, 철거반대투쟁 전개. 2009년 1월 19일 새벽 철거민 생존권 쟁취를 위해, 용산 남일당 건물 옥상 망루농성 돌입. 2009년 1월 20일 새벽 경찰특공대의 무자비한 살인진압으로 사망. 당일 시신 강제부검 당함. 2010년 1월 9일 355일 만에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을 치름. 동지의 삶과 죽음 이상림 열사는 1986년부터 용산구 한강로 2가에서 ‘한강갈비’집을 운영, 1993년부터 같은 자리에 막내아들 내외와 함께 ‘레아호프’로 업종 변경하여, 20여 년간 한 곳에서 장사를 하며 살아오셨다. 가게 위 비.. 2016. 10. 14.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양회성 빈민열사 양회성 약력 1952년 2월 18일 전남순천 출생 2008년 3월 용산 4지구 상공철거민 대책 위원회 건설 2009년 1월 19일 새벽 철거민 생존권 쟁취를 위해, 용산 남일당 건물 옥상 망루농성 돌입. 2009년 1월 20일 새벽 경찰특공대의 무자비한 살인진압으로 사망. 당일 시신 강제부검 당함. 2010년 1월 9일 355일 만에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을 치름. 동지의 삶과 죽음 본인이 직접 요리하며 일식당을 운영하던 양회성 열사는 두 아들과 함께 일식당을 꾸리며 살아가는 것이 소원이셨다. IMF로 인해 몇 차례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가족들과의 약속, 아들들과 이루고 싶었던 꿈을 생각하며 꿋꿋이 살아오셨다. 2004년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빚을 내어 용산국제빌딩 옆에 삼호복집을.. 2016. 10. 14.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한대성 빈민열사 한대성 1956년 6월 14일 강원화천 출생 2008년 6월 수원신동 철거민 대책 위원회 건설 2009년 1월 19일 새벽 철거민 생존권 쟁취를 위해, 용산 남일당 건물 옥상 망루농성 돌입. 2009년 1월 20일 새벽 경찰특공대의 무자비한 살인진압으로 사망. 당일 시신 강제부검 당함. 2010년 1월 9일 355일 만에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을 치름. 동지의 삶과 죽음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고 가정을 꾸린 한대성 열사는, 가난이 대물림될까 두려워 강원도에서 나와 수원에 일자리를 얻었다. 수원 변두리 논밭 가운데 위치한 작은 마을 신동으로 이사와 20년을 살아왔다. 그리고 결혼 10년 만에야 월세 단칸방을 벗어나 이웃에 있던 아담한 독채로 옮겨 살며, 가진 것 없지만 행복한 가정을.. 2016. 10. 12.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이성수 빈민열사 이성수 약력 1959년 9월 1일 경기시흥 출생 2008년 2월 용인신봉 철거민 대책 위원회 건설. 2009년 1월 19일 새벽 철거민 생존권 쟁취를 위해, 용산 남일당 건물 옥상 망루농성 돌입. 2009년 1월 20일 새벽 경찰특공대의 무자비한 살인진압으로 사망. 당일 시신 강제부검 당함. 2010년 1월 9일 355일 만에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을 치름. 동지의 삶과 죽음 유난히 사람을 좋아하던 이성수 열사는 2007년, 용인 수지에서 13년을 살아오던 집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하루아침에 철거당했다. 13년 전에도 강제철거 당해 쫓겨났는데, 두 번째 강제철거를 당한 것이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자녀가 돌아오니 집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뻥튀기’ ‘즉석 생과자’를 파는 노점으로 .. 2016. 10. 9.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윤용헌 빈민열사 윤용헌 1961년 9월 22일 충남천안 출생 2005년 중구순화 철거민 대책 위원회 건설 2009년 1월 19일 새벽 철거민 생존권 쟁취를 위해, 용산 남일당 건물 옥상 망루농성 돌입. 2009년 1월 20일 새벽 경찰특공대의 무자비한 살인진압으로 사망. 당일 시신 강제부검 당함. 2010년 1월 9일 355일 만에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을 치름. 동지의 삶과 죽음 ‘미락정’. 윤용헌 열사가 10년 가까이 중구 순화동에서 장사하던 한정식 식당이자, 가족이 함께 살고 있는 집이었다. 유들유들한 성격의 열사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미락정’에 온갖 정성을 쏟으며 열심히 일해 왔다. 2005년 순화동에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영업을 하는 상가들이 있음에도, 동네는 철거용역 깡패들에 의.. 2016.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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