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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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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묘18

(중종) 금원군 앙지 이영, 파징군부인 해주정씨 -전주이씨- 중종대왕의 3남으로 휘는 영(쫜), 자는 앙지(仰止)이다. 어머니 희빈(熙嬪) 남양홍씨는 경주(景舟)의 딸인데, 공은 희빈의 두 아들 중 큰 아들로 1513년(중종 8) 6월 9일에 태어나 1520년(중종 15)에 봉작을 받고 문소전(文昭殿) · 연은전(延恩殿)의 도제조(都提調), 사옹원(司饔院) 도제조, 종부시(宗簿寺) 도제조와 관종친부사(管宗親府事)를 겸임하다가, 1562년(명종 17) 4월 7일에 별세하니 향년 50세이다. 성품이 어질고 순하며 거짓이나 겉치레를 모르고,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서 자유생활을 즐겼지만, 여러 벼슬을 지내면서 임금의 총애를 받았다. 배위는 파징군부인(波澄郡夫人) 정씨(鄭氏)로서 증 좌찬성 승휴(承休)의 딸인데 아들은 없고 1녀만이 있어 남관(南琯)에게 출가하였다. 2018. 10. 27.
(세조-창원군) 덕진군 이활, 평산군부인 평산신씨, 청원군부인 청주한씨 -전주이씨- 덕진군 이활 덕진군(德津君) [德津君(중종 16)] 휘는 활(?), 자는 원지(源之). 창원군의 계자(繼子) 생부는 덕원군이다. 덕진군은 연산군이 폭정과 음학을 일삼자 여러 차례 간했으나 듣지 않자 1506년(중종 1) 종실 중 운수군(雲水君) 효성(孝誠)과 상의하여 반정을 일으켜 성공, 정국공신(靖國功臣) 2등에 책록되어 종1품 가선대부가 되었다. 덕진군은 기상이 웅대하고 의지가 굳었으며 효심과 우애가 깊고 학문을 좋아하여 세칭 문장이라 일컬어졌다. 1521년(중종 16) 6월 9일 종기를 앓다가 향년 53세로 별세하였다. 배위 평산군부인 평산신씨는 억년(億年)의 딸로 1녀를 두어 성율(成慄)에게 출가시켰고, 배위 청원군부인 청주한씨는 충례(忠禮)의 딸로 3남 2녀를 두었다. 장남은 대원정(大原正)에 .. 2016. 8. 21.
(세조) 창원군 이성 [장소공], 덕양군부인 교하노씨, 광산군부인 광주정씨 -전주이씨- 창원군 장소공 이성 창원군(昌原君) [1455(세조 1)∼1505(연산군 11)] 휘는 성(晟), 시호는 장소(章昭). 세조대왕의 2남이며 덕원군의 아우이다. 어머니는 근빈(謹嬪) 박씨이다. 1464년(세조 10) 군으로 봉해지고, 1481년(성종 12) 소덕대부(昭德大夫)에 올랐다. 창원군은 군자의 기풍을 갖고 항상 효도하고 우애롭고 덕화(德化)의 도에 힘쓰고 여가에 문학을 익혔다. 1872년(고종 9) 영종정경에 추봉되었다. 창원군의 묘소는 시흥군 동면 팔애동 신림(현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병좌에 예장했었다. 그러나 실전되어 내려오다가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묘소부근에 살고 있던 윤씨들이 석물을 비롯하여 묘역을 마구 훼손하여 알아볼 수도 없게 만들어 놓았다. 이에 판윤 11대손 동현(東鉉)은 의.. 2016. 8. 21.
(세조) 덕원군 이서 [소간공], 임천군부인 경주김씨, 봉산군부인 함안유씨, 안성군부인 청주양씨, 창녕군부인 창녕성씨 -전주이씨- 덕원군 소간공 이서 덕원군의 휘는 서(曙), 자는 정수(晶첤)이며 호는 종덕암(宗德菴), 시호는 소간(昭簡)이다. 근빈 선산박씨에게서 태어났다. 세조대왕의 왕자이며 10세에 덕원군에 책봉되었다. 덕원군은 1455년(단종 3) 7세 때 어머니 근빈 박씨를 여의고 부왕의 총애를 받으며 자랐다. 1462년(세조 8) 14살에 이미 혼인하여 사제(私第) 60여 칸을 하사받아 이 때부터 궁궐밖 건천동(乾川洞)에서 생활하였다. 효심이 지극하여 부왕을 정성껏 모셨으며 임금이 거둥시에는 항시 배행(陪行)하였다. 하루는 부왕이 온양온천에 행행할 때 종덕(宗德)에 잠시 머무르니 군이 부왕앞에 나가 이 곳 땅을 내려주실 것을 아뢰어 허락하니, 원래 이 곳은 나라에서 지표(地標)를 묻은 곳이라 이 곳 수구(水口)에 긴뚝을 쌓.. 2016. 8. 21.
(고종) 의친왕 만오 이강, 의친왕비 연안김씨 -전주이씨- 의친왕 만오 이강 고종의 다섯째 아들로 1877년에 태어났다. 어머니 귀인 장씨는 의친왕을 낳고 명성황후의 박해를 피해 궁 밖에서 살다가, 1900년 숙원(淑媛) 칭호를 받고 1906년에야 겨우 귀인(貴人)에 봉해졌다. 귀인 장씨가 언제 죽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1911년 묘소를 이장했다는 기록이 있어, 1906년과 1911년 사이인 것은 분명하다. 1892년 1월 28일 의화군(義和君)에 봉해졌고, 1893년 12월 6일 김사준의 딸 김수덕(金修德)을 아내로 맞았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보빙대사가 되어 일본을 방문하였다. 일본의 게이오 대학교를 거쳐 1900년, 미국으로 건너가 버지니아 주세일럼의 로어노크 칼리지와 오하이오 주 델라웨어의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 및 하와이와 샌프.. 2016. 7. 21.
(예종) 제안대군 이현 [영효공], 상산부부인 상주김씨 -전주이씨- 영효공 제안대군 이현 1466년(세조 12)∼1525년(중종 20). 예종의 둘째아들이며, 이름은 현(琄). 자는 국보(國寶). , 어머니는 안순왕후 한씨(安順王后韓氏)이다. 4세 때 부왕인 예종이 죽자, 왕위계승의 제1후보자였으나 세조비인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아직 어리고 총명하지 못하다고 반대하여 대신 성종이 예종을 이어 왕위에 즉위하였다. 1470년(성종 1) 5세의 나이로 제안대군에 봉해져 녹봉(祿俸)과 직전(職田)을 지급받았으며, 후일 세종의 제5자인 평원대군(平原大君) 임(琳)의 후사로 입양되었다. 12세에 사도시정(司䆃寺正) 김수말(金守末)의 딸과 혼인하였으나 어머니 안순왕후에 의하여 내쫓긴 바 되어, 14세에 다시 박중선(朴仲善)의 딸과 혼인하였지만, 김씨를 끝내 못잊어하자 1485년 성종.. 2016. 4. 26.
(태종) 양녕대군 이제[강정공], 수성부부인 광산김씨 -전주이씨- 양녕대군 강정공 이제 1394(태조 3)∼1462(세조 8). 조선 전기의 왕자. 이름은 제(禔). 자는 후백(厚伯). 태종의 장남이고, 어머니는 여흥 민씨로 민제(閔霽)의 딸이며, 부인은 광주 김씨(光州金氏)로 김한로(金漢老)의 딸이다. 1404년(태종 4)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자유분방한 성품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왕세자로서 지녀야 할 예의 범절이라든가, 딱딱한 유교적인 교육이나 엄격한 궁중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남몰래 궁중을 벗어나서 사냥을 하는 등의 자유분방한 풍류 생활을 더 즐겼다. 이와 같은 품행은 부왕인 태종의 눈에도 걱정스럽게 비쳤으며, 엄격한 유학자들에게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태종은 몇 차례 그에게 군왕으로서 지녀야 할 덕행을 닦도록 타이르기도 하고, .. 2015. 12. 8.
(중종) 봉성군 이완 [의민공], 동래군부인 동래정씨 봉성군 의민공 이완 ?∼1547(명종 2). 조선 중기의 종실. 중종의 여섯째아들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완(岏), 자는 자첨(子瞻). 희빈홍씨(熙嬪洪氏) 소생이며, 영의정 정유인(鄭惟仁)의 딸과 혼인하였다. 1545년(인종 1) 인종의 병사를 계기로 정세를 만회한 이기(李芑)·윤원형(尹元衡) 등은 정권의 기반을 굳히고자 을사사화를 일으켜 사림을 제거하고, 아울러 종친 중에서 명망이 있었던 봉성군을 제거하고자 하였다. 리하여 임백령(林百齡)은 때마침 하옥된 이덕응(李德應)을 위협하여 봉성군을 추대하여 역모를 꾀하였다고 거짓 자백하게 하여 죄를 주고자 하였다. 그러나 국왕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기는 “인종의 병이 위독할 때 윤임(尹任) 등이 봉성군으로서 왕위를 이으려고 하다가 형세가 .. 2015.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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