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문신) 악남 정석, 정부인 밀양박씨, 정부인 전주이씨 악남 정석 1619(광해군 11)∼1677(숙종 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백야(白也), 호는 악남(岳南). 원희(元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흠(欽)이고, 아버지는 효준(孝俊)이며, 어머니는 이진경(李眞卿)의 딸이다.1649년(인조 27)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학정(學正)ㆍ정언을 거쳐 지평이 되어 1654년(효종 5)에 인조의 총희 조숙원(趙淑媛)문제를 논하다가 영산(靈山)에 유배되었다. 2년 뒤 복관되어 정언ㆍ지평ㆍ장령 등을 역임하였고, 1662년(현종 3)에 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으로 문신정시(文臣庭試)에 3등으로 합격하였다. 그 뒤 수찬ㆍ교리ㆍ집의ㆍ응교를 거쳐 1669년에 동래부사가 되어 왜관(倭館)을 동래부로 옮기기도 하였으나 왜인을 잘 규리(糾理)하지 못하였다 .. 2013. 4. 20. (문신) 해원군 백교 정식, 정부인 영월엄씨 해원군 백교 정식 정식(鄭植) 1615(광해군 7)~1662(현종 3).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자고(子固). 호는 백교(白郊)라 하였다 지돈녕부사 해풍군(海豊君) 정효준(鄭孝俊)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이진경(李眞卿)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출중하여 1642년(인조 20) 사마시에 합격한 뒤 1650년(효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발탁되고 사간원 정언에 임명되어 유생들을 위해 바른 말로 다투다가 거산찰방으로 좌천되었다. 대신들의 주청에 따라 곧 조정에 들어와 시강원문학, 사헌부의 지평ㆍ장령을 거쳐 세자시강원 필선에 임명되었으나 부모 봉양을 위해 남양부사로 부임하였다. 질병으로 자리를 옮겨 사복시와 상의원(尙衣院)의 정(正)에 임명되었으나 1662년 감기로 세상을 떠났다. 맏아들.. 2013. 4. 20. (무신) 성순 어재순 성순 어재순 1826(순조 26)∼1871(고종 8). 조선 후기의 무장.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성순(聖淳). 용인(用仁)의 아들이며, 신미양요 때 진무중군(鎭撫中軍)으로서 순국한 재연(在淵)의 아우이다. 그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홀로 대소가를 지키며 은거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신미양요가 발생, 형 재연이 진무중군이라는 막중한 중책을 지고 광성보(廣城堡)에 농성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이에 분연히 궐기, 형을 따라 미군을 격퇴할 결심을 굳히면서 백의종군을 선언하자, 일가친지들은 지금 강화도에는 적선이 바다를 메워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생사는 하늘에 달려 있으니 적이 두려워서 어찌 나라를 구하는 일을 못하랴.”라고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광성보로 달려갔다. 어재연 중군이 아우 .. 2013. 3. 6. (무신) 성우 어재연 [충장공] 충장공 성우 이재연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성우(性于). 아버지는 용인(用仁)이다. 1841년(헌종 7) 정시무과에 급제한 뒤 훈련원주부·판관·첨정·총위영초관·형조정랑을 역임한 뒤 1847년 광양현감이 되었다. 재임시 환곡 업무를 공정히 처리하고, 옥사를 잘 다스렸으며, 군기수선을 잘 하여 통정대부로 승급되었다. 1856년(철종 7) 해주진영(海州鎭營) 병마절도사를 거쳐 풍천부사가 되었다. 1862년 대구영장을 거쳐 1864년(고종 1) 장단부사가 되어 공정한 과세를 위해 힘써 고종에게서 표리(表裏)를 하사받았다. 1866년 공충도병마절도사가 되었는데, 그해 프랑스 로즈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해오자, 병사를 이끌고 광성진(廣城鎭)을 방어했다. 이어 회령부사가 되어 도적들을 토벌하고, 관내의 개시(開市).. 2013. 3. 6. (문신) 근곡 이관징 [정간공], 정경부인 삭녕최씨 정간공 근곡 이관징 1618(광해군 10)∼1695(숙종 2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국빈(國賓), 호는 근옹(芹翁)·근곡(芹谷). 심(襑)의 아들이다. 1639년(인조 17) 사마시에 합격하고, 성균관 유생으로서 뛰어난 재질을 보여 천거로 참봉이 되고, 1653년(효종 4)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한 뒤 사헌부장령이 되었다. 1660년(현종 1) 효종이 죽자, 효종의 계모인 조대비(趙大妃)의 복상문제가 있을 때 당시 기년설(朞年說:만1년)을 주장한 송시열(宋時烈) 등 서인에 대하여 만3년설을 주장하다가 쫓겨난 남인 허목(許穆) 등을 구제하려다가 전라도도사로 좌천되었다. 1664년 다시 장령이 되고, 1672년 승지가 되었다. 1674년 숙종이 즉위.. 2013. 2. 25. (문신) 숭의전부사 왕순례 숭의전부사 왕순례 생몰년 미상 고려 왕족. 본관은 개성이며, 본명은 왕우지(王牛知)이다. 고려 현종의 원손(遠孫)으로 왕휴(王休)의 후취인 오씨의 소생 왕미(王美)의 아들이다. 고려가 망한 뒤 조선 왕조의 핍박을 피해 공주 왕촌(지금의 충남 공주시 상왕동 중동골로 추정)에 숨어 살았다. 그후 조선 왕조의 유화정책으로 1397년(태조 6) 고려 태조를 비롯한 7대 왕을 제사지내는 묘(廟)가 중건되고 1451년(문종 원년) 숭의전이라 명명하였다. 당시 고려조의 충신인 정몽주 외에 고려 왕실의 후손들을 찾는 와중에 공주에 머물고 있었다. 왕우지는 왕순례로 개명되었으며, 이듬해인 1452년(단종 원년) 7월에 숭의전(崇義殿) 부사(副使)가 되었다. 후손들은 대대로 숭의전의 전감(殿監) 또는 참봉을 역임하였다. 2013. 2. 20. 이전 1 ··· 111 112 113 114 115 116 117 ··· 130 다음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