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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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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대) 사릉(思陵) - 정순왕후(定順王后) 여산송씨 [사적 제209호] 정순왕후(定順王后) [사릉(思陵)] - 사릉(思陵)은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능이며 단릉 형식이다. 처음에는 단종의 누이인 경혜공주가 출가한 해주 정씨 묘역이었던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사릉리에 민간 신분의 묘로 조성되었다. 그 후 중종 때 대군 부인의 예로 복위되고, 숙종 때(1698년) 왕후의 능으로 추봉되었기 때문에 다른 능에 비하여 단출하면서 간소하다. 능침의 규모는 매우 작고, 병풍석 난간석을 설치하지 않았으며, 문석인과 석마만이 자리 잡고 있다. 양석과 호석도 한 쌍 씩으로 간소화되어 있다. 사릉의 정자각은 맞배지붕으로 되었으며 배위가 짧기 때문에 전체 건물의 모습이 정(丁)자형 보다는 정사각형의 느낌을 준다. 정자각에 오르는 계단은 동계만이 남아 있다. 사릉은 문화재청이 관할하는 궁과 능에 필.. 2012. 11. 23.
(06대) 장릉(莊陵) - 단종(端宗) [사적 제196호] 단종(端宗)[장릉(莊陵)] - 문종(文宗)이 임종(臨終)에 앞서 단종(端宗)의 유충(幼沖)함을 염려하여 영의정 황보인(領議政 黃甫仁), 좌의정 김종서(左議政 金宗瑞) 등에 보좌(補佐)를 유언(遺言)으로 남겼으나 고명대신 등(顧命大臣 等)이 단종 원년(端宗 元年)(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란(癸酉靖亂)으로 피살(被殺)되고 문종(文宗)의 제(弟)이며 왕숙(王叔)인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영의정(領議政)이 되어 군국대사(軍國大事)를 좌지우지(左之右之)하였고 수양(首陽)은 동복제 안평대군(同腹弟 安平大君)이 고명대신(顧命大臣)과 불궤(不軌)를 꾀하였다 하여 강화도(江華島)로 추방(追放)하고 단종(端宗) 3년(1455년) 윤6월(閏6月) 11일 역시 동복제 금성대군(同腹弟 錦城大君)을 역모(逆謀)의 죄(罪).. 2012. 11. 22.
(10대) 연산군묘 - 연산군, 거창군부인 거창신씨 [사적 제362호] 연산군(燕山君), 거창군부인(居昌郡府人) 연산군(燕山君, 1476년 음력 11월 7일 (양력 12월 2일) ~ 1506년 11월 6일, 재위 1494년 ~ 1506년)은 조선의 제10대 임금이다. 휘는 융(㦕)[1]. 성종의 장남으로 폐비 윤씨의 소생이며, 비는 영의정 신승선(愼承善)의 딸이다. 모후 폐비 윤씨의 폐출 이후 정현왕후의 손에 자랐으나, 자신의 생모가 폐비 윤씨임을 알게 되었다. 그 뒤 어머니 폐비 윤씨를 왕비로 추숭하려 하자, 성종의 유명을 내세워 왕비 추숭을 반대한 사림파 문인들과 갈등하다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빌미로 사림파를 제거했다. 또한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을 빌미로 발생한 갑자사화에서는 훈구파도 대량으로 숙청되어, 사림, 훈구 양측을 모두 적으로 돌리게 되었다. 사림파 관료들과의.. 2012. 11. 19.
(15대) 광해군묘 - 광해군, 문성군부인 문화류씨 [사적 제363호] 광해군(光海君), 문성군부인(文城郡夫人) 광해군(光海君, 1575년 음력 4월 25일~1641년 음력 7월 1일)은 조선의 제15대 임금이다. 휘는 혼(琿). 선조(宣祖)와 공빈 김씨(恭嬪 金氏)의 둘째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세자로 책봉되었고, 함경도와 전라도 등지에서 군수품과 의병을 직접 모집하고 군량미를 모으는 데에도 힘썼다. 임진왜란 동안 세자의 몸으로 부왕을 돕고 전쟁 승리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으나, 부왕의 인정은커녕 견제와 냉대를 당해야 했다. 임진왜란 이후 우여곡절 끝에 1608년 왕위에 올랐다. 임진왜란의 뒷수습과 민생 안정을 위해 남인 이원익을 영의정에 등용하는 듯 여러 노력을 기울였으며, 후금과의 전쟁 위기 상황에서 실리외교를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왕.. 2012. 11. 18.
(문신) 선원 김상용 [문충공], 정경부인 안동권씨 문충공 선원 김상용 1561년(명종 16)∼1637년(인조 15). 조선 인조 때의 상신(相臣)이며, 병자호란 때의 순절인(殉節人). 본관은 안동. 자는 경택(景擇), 호는 선원(仙源)·풍계(楓溪)·계옹(溪翁). 서울 출신. 돈령부도정(敦寧府都正) 극효(克孝)의 아들이며, 좌의정 상헌(尙憲)의 형, 좌의정 정유길(鄭惟吉)의 외손이다. 1582년(선조 15) 진사가 되고 1590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강화 선원촌(江華仙源村: 지금의 江華郡 仙源面 冷井里)으로 피난했다가 양호체찰사(兩湖體察使) 정철(鄭澈)의 종사관이 되어 왜군토벌과 명나라군사 접대에 공을 세움으로써 1598년 승지에 발탁되고, 그뒤 왕의 측근에서 전란중의 .. 2012. 11. 11.
(대중가수) 배호 [배신웅] 대중가수 배호 1942. 4. 24 중국 산둥 성[山東 省]~ 1971. 11. 7 서울. 본명은 배신웅(裵信雄). 광복군 제3지대에서 독립운동을 한 아버지 배국민과 어머니 김금순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해방 후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에서 살다가 1955년 아버지가 죽자 부산으로 내려가 이모가 운영하는 모자원에서 생활하면서 부산 삼성중학교 2학년 1학기를 수료했다. 1956년 8월 음악을 하기 위해 혼자 상경하여 외삼촌인 김광빈에게 드럼을 배운 지 1년 만에 통달하고, 김광빈악단에서 드럼 연주를 하였다. 1963년 김광빈 악단 및 김인배 악단에서 드럼을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 즈음 예명을 배호로 하고, 김광빈이 작곡하고 편곡한 〈굿바이〉와 〈사랑의 화살〉을 발표하며 가수로 .. 2012.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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