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보현당 묘지에서 역사인물을 만나다.
  • 보현당의 묘지기행
  • 수곡당, 지국와
반응형
(문신) 간평공 이발, 정부인 김제조씨 간평공 이발 1371년(공민왕 20)∼1426년(세종 8). 본관은 성주(星州). 증조부는 문열공(文烈公) 이조년(李兆年)이다. 음직(蔭職)으로 별장(別將)에 보직(補職)되고 1388년(창왕 1) 장흥고사(長興庫使)를 제수받았다. 사헌규정(司憲糾正), 고공좌랑(考功佐郞), 내부경 겸 사헌중승(內府卿兼司憲中丞)을 거쳐 1397년(태조 6) 좌군첨절제사(左軍僉節制使), 1399년(정종 1) 상주목사(尙州牧使), 1403년(태종 3) 공조전서(工曹典書), 형조‧예조 전서(典書), 원주목사(原州牧使), 병조참의, 판안변도호부사(判安邊都護府事), 중군동지총제(中軍同知摠制), 한성부윤, 충청도‧풍해도‧함길도‧경상도도관찰사, 공조‧호조‧형조참판, 형조‧병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시호(諡號)는 간평(簡平) 이며 이유(李洧.. 2012. 10. 12.
(문신) 봉래 양사언, 숙부인 음성박씨, 숙부인 간성이씨 봉래 양사언 1517년(중종 12)∼1584년(선조 17). 조선 전기의 문인‧서예가.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응빙(應聘), 호는 봉래(蓬萊)‧완구(完邱)‧창해(滄海)‧해객(海客). 주부인 양희수(楊希洙)의 아들이다. 형 양사준(楊士俊), 아우 양사기(楊士奇)와 함께 문명을 떨쳐 중국의 미산삼소(眉山三蘇)에 견주어졌고, 아들 양만고(楊萬古)도 문장과 서예로 이름이 전한다. 1546년(명종 1) 문과에 급제하여 대동승(大同丞)을 거쳐 삼등‧함흥‧평창‧강릉‧회양‧안변‧철원 등 8고을의 수령을 지냈다. 자연을 즐겨 회양군수로 있을 때는 금강산에 자주 가서 경치를 완상하였으며, 만폭동(萬瀑洞)의 바위에 ‘蓬萊楓岳元化洞天’이라 새겨진 그의 글씨가 지금도 남아 있다. 안변군수로 있을 때는 선정으로 통정대부(通政.. 2012. 10. 10.
(관직) 안성부원군 이숙번 [충숙공], 서원부부인 청주정씨 안성부원군 충숙공 이숙번 조선의 문신. 경(坰)의 아들. 1393년(태조 2) 문과(文科)에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1398년 지안산군사(知安山郡事)로 있을 때 방원(芳遠:太宗)과 함께 사병(私兵)을 출동시켜 경복궁(景福宮)을 포위, 정도전(鄭道傳)·남은(南誾) 등을 죽이는 등 제1차 왕자의 난에 공을 세워 정사공신(定社功臣) 2등에 안성군(安城君)에 봉해졌다. 1400(정조 2) 박포(朴苞) 등이 방간(芳幹)을 받들고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자 선두에서 이를 토벌,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이 되었다. 1402년(태종 2) 지승추부사(知承樞府事)가 되고,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를 거쳐 1406년 중군총제(中軍摠制)가 되었으며, 이듬해 판의용순금사사(判義勇巡禁司事)에 올랐다... 2012. 10. 10.
(인조의 국구) 서평부원군 한준겸 [문익공], 회산부부인 창원황씨 서평부원군 문익공 한준겸 1557 (명종 12) ~ 1627 (인조 5) 조선의 정치가. 인조(仁祖)의 장인. 자는 익지(益之). 호는 유천(柳川). 시호는 문익(文翼). 본관은 청주(淸州). 생원에 장원으로, 진사에 7등으로 합격, 태릉(泰陵) 참봉이 되었다가 1586년(선조 19) 문과에 급제, 사국(史局)에 뽑혀 검열(檢閱)이 되었다. 선조가 출제하여 유신(儒臣)들에게 글을 짓게 했을 때 수위로 뽑혀 표피(豹皮)를 상으로 받았으며, 금천(衿川) 현감으로 재직 중 정여립(鄭汝立)의 반란이 일어나자, 앞서 정여립의 사위 이진길(李震吉)을 천거했었던 관계로 수금되었다. 1592년 예조 정랑을 거쳐 원주 목사(原州牧使)ㆍ지평(持平) 등을 거쳐 1597년(선조 30) 승지(承旨)에 이르러 왜병이 또다시 쳐들.. 2012. 10. 9.
(영월 단종대왕 유적지) 자규루 및 관풍헌(子規樓 및 觀風軒) 자규루 및 관풍헌(子規樓 및 觀風軒) 자규루 및 관풍헌은 15세에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의 청령포에 유배된 단종의 슬픈 역사가 있는 곳으로, 1971년 강원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다. 자규루는 옛 객사 근처의 건물로, 관풍헌에서 동쪽으로 약 70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영월군수 신숙근이 세종 10년(1428)에 창건하여 매죽루라고 하였으나, 후에 단종이 이곳에 거처하면서 누각에 올라 자신의 고뇌를 ‘자규사’ 및 ‘자규시’로 읊은 것이 계기가 되어 이름이 자규루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 후 이 누각은 선조 38년(1605)의 대홍수로 인하여 민가가 들어설 정도로 폐허가 되었는데, 강원도관찰사 윤사국(1728-1809)이 정조 15년(1791)에 영월을 순찰할 때 옛 터를 찾아 .. 2012. 10. 8.
(무신) 한흥군 이여발 [정익공], 정부인 경주이씨 정익공 한산군 이여발 이여발(李汝發, 1621년 ~ 1683년)의 자는 군실(君實), 시호는 정익(貞翼)이며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의배(義培)의 손자로서 조선 효종 2년(1651) 무과에 급제, 비변랑(備邊郞), 도총사를 거쳐 숙천(肅川)부사로 선정을 베풀어 거사비(去思碑)가 세워졌다. 충청병마절도사를 거쳐 특히 회령(會寧)부사에 보직되어 가선대부(嘉善大夫)의 위계에 오르고 한흥군(韓興君)에 봉해졌는데, 회령은 북방의 거진(巨鎭)으로서 야인(野人)들과 서로 무역하는 시장이 있어 야인상인들이 오는 정원도 없고 체류하는 기한도 없어서 우리의 피해가 많았다. 이때 이여발이 부임하여 상인의 출입인원을 320명 이내로, 체류일수를 20일 이내로 규정하여 피해를 줄였다. 현종 때 병·공조.. 2012. 10. 6.
반응형
LIST